인권위 “학생 휴대전화 수거, 인권 침해 아냐” 10년 만에 판단 뒤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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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이후 휴대전화 금지 관련한 307건 인권 침해 판단
학교 현장에서는 불법 촬영, 교권 침해 등 휴대전화 부작용
영국, 프랑스 등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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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가인권위원회가 학교에서 학칙에 근거해 학생의 휴대전화를 일과 중 수거했다가 하교 시 돌려주는 것은 인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교사의 교육권이나 학생 학습권 보다 학생의 행동 및 통신 자유가 침해되는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한 기존의 입장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인권위는 2014년 이후 10년간 휴대전화 수거가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일관되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인권위 “휴대전화 수거에 따른 장점 적지 않아”

7일 인권위는 전원위원회를 열고 ‘고등학교에서 학칙을 근거로 일과 시간에 학생의 휴대전화를 수거·보관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주장한 진정 사건을 기각했다. 해당 사안은 비공개로 논의가 진행됐으며 전원위에 참석한 인권위원 10명 중 8명이 인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기존 인권위의 기조와 상반된 결정으로 지난 2014년 이후 인권위는 유사한 307건의 진정에 대해 일관되게 인권 침해 행위로 판단해 왔다.

지난 10년간 인권위는 해당 교칙이 보장하고자 하는 교사의 교육권이나 학생의 학습권보다 학생의 행동·통신의 자유가 침해되는 피해가 더 크다고 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권위 아동권리소위원회가 “사안이 중대하고 사회적 파장이 미치는 범위가 넓다”며 해당 안건을 전원위에 회부했다. 아동권리소위를 총괄한 이충상 위원은 “학교에서의 휴대전화 수거와 보관은 장점이 단점보다 적지 않고 피해 최소성을 위반하지 않아 인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남규선 위원은 “인권위는 휴대전화 수거를 전면 금지하기보다는 토론을 통해 규율을 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 스스로 욕구와 행동을 통제·관리하는 역량을 기르도록 교육하는 것이 학교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강조해 왔다”며 “이번 사안은 해당 학교의 규정 등을 살펴보고 기각 결정을 한 것일 뿐 10년간 인권 침해라고 판단해 온 것이 깨졌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안창호 인권위원장도 학교 현장의 혼선을 막기 위해 소수 의견을 상세히 담는 등 결정문을 신중하게 작성해 달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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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교칙 개정 권고 이행한 학교 30% 불과

그동안 휴대전화 수거를 인권 침해로 본 인권위의 판단이 지속되면서 학교 현장에서는 혼란이 심화했다. 특히 교실이 휴대전화와 관련한 사이버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 2022년 8월 발생한 충남 교권 침해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충남 홍성군의 A중학교에서 학생이 수업 중 교단에 드러누워 스마트폰을 하는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했다. 해당 영상을 두고 교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오자, 충남도교육청과 학교 측은 해당 학생이 휴대전화를 충전하며 틱톡을 구경 중이었고 이후 교사의 지시에 응해 교단에서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9월에는 광주의 B고등학교에서 3학년 남학생이 교사를 불법 촬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학생은 교탁 아래 휴대전화를 숨겨 놓고 여성 교사를 몰래 촬영해 왔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서 휴대전화를 확인한 결과 교사의 신체 일부를 촬영한 사진과 영상물 80여 건이나 나왔다. 경찰은 불법 촬영을 한 학생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고 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해당 학생에게 퇴학 처분을 내렸다.

인권위의 권고가 강제력이 없어 진정 대상 학교가 교칙을 개정하지 않는 사례도 많았다. 올해 1월 인권위로부터 교내 휴대전화 일괄 수거를 중단하라는 권고를 받은 경남 C고등학교는 학내 심의를 거쳐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회신했다. 해당 학교는 “학부모·학생·교사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며 “학습권·교권 침해 등 부작용이 커 인권위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인권위가 교내 휴대전화 사용 금지 학칙과 관련해 시정 권고를 한 안건은 56건으로 이 중 권고를 수용한 사례는 17건(30%)에 불과했다.

휴대전화 사용을 학생 자율에 맡겨 스스로 통제하고 책임지는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는 인권위의 지적을 두고도 학교 현장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인권위 권고를 수용한 대구 D고등학교는 학칙을 개정해 쉬는 시간에만 휴대전화를 사용하도록 했는데 학생들이 알아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며 휴대전화 관련한 마찰이 줄었다. 일각에서는 사용 제한 조치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터넷 강의용 태블릿 PC 소지가 허용돼 사실상 SNS, 유튜브, 동영상 촬영 등에 제약이 없고 수거 시 공기계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몰래 사용하는 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반면 이미 휴대전화가 학생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주장도 있다. 광주 E고등학교의 생활부장 교사는 “수업 중에도 스마트폰을 놓지 않아 토론수업, 모둠활동 등 협동학습은 힘을 잃었고 체육수업 등 신체활동을 꺼리는 분위기”라며 “급식소에서는 학생 대부분이 웹툰이나 유튜브를 보면서 밥을 먹기 때문에 친구와 대화하며 식사하는 모습도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수거 조치 이후에는 학생회장 선거 출마자들이 일과 중 스마트폰 소지를 허용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압도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다.

유네스코 “디지털 기술의 긍정성 과대평가 돼”

교실 내 휴대전화 사용 제한은 최근 해외에서도 사용 금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인권위 판단에서 기각의 근거로 활용된 유네스코의 ‘글로벌 교육 모니터 보고서’에서도 교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권고했다. 올해 7월 발표된 해당 보고서에서 유네스코는 “디지털 기술의 긍정성이 과대평가 됐다”며 “과도한 휴대전화 사용으로 인한 정서 혼란, 학습 부진, 사이버 괴롭힘을 막기 위해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요 선진국에서도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과몰입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잇달아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올해부터 ‘학교 내 휴대전화 지침’을 시행해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일과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다. 프랑스는 15살 미만 학생들에게 학교 안팎에서의 교육활동 시간 내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내년부터는 중학교에서 등교 후 스마트폰를 수거하는 정책도 시행한다. 

미국은 공립학교 77%가 이미 교내에서 휴대전화 사용 금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플로리다주는 14세 미만 미성년자의 SNS 사용을 금지했고, 뉴욕주는 SNS 기업이 부모 동의 없이 미성년자에게 중독성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2020년 이후 초등학생은 휴대전화 소지 및 사용 금지, 중학생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를 인정하며 고등학생은 자율적 규칙에 따르고 있다.

뉴질랜드도 올해 5월부터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휴대전화 사용은 금지된다. 크리스토퍼 럭슨(Christopher Luxon) 뉴질랜드 신임 총리는 “한때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뉴질랜드 학생들의 문해력이 위기에 봉착했다”며 “지금은 아이들이 배우고 성취할 수 있도록 방해 요소를 줄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내년 총선을 앞둔 호주에서는 앤서니 앨버니지(Anthony Albanese) 총리를 비롯해 야당인 자유당의 피터 더턴(Peter Dutton) 대표가 SNS 사용 연령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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