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 韓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 인간 생의 연약함 드러내”
한강 노벨 문학상 영예, 김대중 전 대통령 평화상 수상 이후 24년 만의 쾌거
역사적 폭력 등 보편적 문제를 중심으로 한 '애도적 서사'에 유럽 문학계도 주목
2016년 맨 부커 국제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수상하기도
한국 소설가 한강이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 2000년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지 24년 만에 두 번째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한 것이다.
소설가 한강 노벨 문학상 수상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 시각)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발표했다. 1901년부터 올해까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총 121명 중 아시아 국적의 여성 작가는 한강이 유일하다. 한강은 노벨상 수상자로서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3억4,000만원)와 메달, 증서를 받을 예정이다.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오는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한림원은 한강을 수상자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을 써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강은 자기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며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덧붙였다.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한강은 “아들과 서울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수상 소식을 듣게 돼) 매우 놀랐고 영광스럽다”며 “아들과 나는 모두 그저 놀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책과 함께, 한국 문학 속에서 성장했다”며 “한국의 문학 독자들과 동료 소설가들에게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유럽 문학계의 심금 울린 ‘애도적 서사’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서 문단에 등단한 한강은 죽음과 폭력 등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시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내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가 써 내려간 애도적 서사의 미학적 성취는 유럽 문학계의 주목을 이끌기도 했다.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프랑스어 번역작 ‘불가능한 이별’)가 지난해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문학상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4.3 사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투쟁의 서사가 담겨 있다. 눈에 띄는 건 20세기 한국 역사의 정치적 폭력을 조명하면서도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일차적 감상보단 애도의 윤리를 재현하는 데 더 공을 들였단 점이다. 이 같은 기조는 주인공 경하가 친구 인선의 어머니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과정 속에서 아픈 과거사를 되짚는 식의 작품 서사 구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메디치 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것도 한강이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적 진실을 응시하는 방식 그 자체였다. 역사적 진실 혹은 개인의 고통을 응시하며 피해자를 둘러싼 애도적 서사를 구체적으로 조형해 낸 한강의 독창적인 세계관이 유럽 문학계 인사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단 것이다. 프랑스 언론 르 몽드가 ‘작별하지 않는다’를 소개하며 “경하의 몽환적이고 추모적인 여정은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눈부신 새로운 인식의 세계이자 가공할 만한 감성적 재현”이라고 표현한 것에서도 작품을 둘러싼 유럽 문학계의 감상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맨 부커 국제상 등 수상 경력도 다수
한강이 해외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채식주의자’ 출간 이후부터다. ‘채식주의자’는 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연재된 소설로, 가부장의 폭력을 조명하며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 생태여성주의)적 주제 의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은 한강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소설은 지난 2015년 ‘더 베지터리언(The Vegetarian)’이라는 제목으로 해외에 출간된 이후 2016년 맨 부커 국제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맨 부커 국제상은 노벨 문학상과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이외 2017년에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2018년엔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지난 3월엔 ‘작별하지 않는다’로 제7회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