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최대 규모 부양책, 비관론-낙관론 팽팽
中 란포안 재정부장, 점진적 재정 부양 예고
특수채권 발행 및 재정적자 규모 확대
디플레이션 목전, 더 큰 부양책 요구 목소리도
부진한 경기에 대응해 잇따라 내놓는 중국의 대응책에 시장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구체적인 부양책 규모 등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론과 추가 부양책을 기대하자는 낙관론이 함께 나오는 모습이다.
낙관론 측 “가뭄 속 단비”
12일 란포안(藍佛安) 중국 재정부장은 3명의 부부장(차관)과 함께 중국의 재정 부양책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란 부장은 이 자리에서 “차입 및 재정적자를 확대할 공간이 크다”며 점진적인 재정 부양을 예고했다. 그러면서 ‘역주기조절(逆周期調節) 강화’에 대해 설명했다. ‘역주기조절’은 경기가 침체하면 금리 인하와 정부 투자 확대 등을 통해 추가 하락을 막고, 경기가 과열되면 시장의 유동성을 적절하게 긴축하는 경기 대응 정책을 말한다.
란 부장은 이날 올해 나머지 석 달 동안 특수채권 2조3,000억 위안(약 439조원)을 발행하고, 올해 재정적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1,800억 위안(약 34조원) 늘어난 4조600억 위안(약 776조원)으로 편성할 것이라며 적극적 재정정책을 강조했다. 그는 또 지방정부의 부채 리스크 해결, 대형 국유은행의 자본 보충, 부동산 시장의 추가 하락 방지, 소외 계층 지원 등 네 가지 경기 대응 정책을 들었다. 이어 “역주기조절은 네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며 “더 많은 정책 도구를 현재 연구 중이며, 중앙 재정은 차입을 크게 늘릴 공간과 적자를 확대할 공간을 여전히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전문가 반응은 엇갈렸다. 중국 관영 매체는 이번 회견을 가뭄 속 단비를 뜻하는 ‘급시우(及时雨)’에 비유하며 추가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고 둥시먀오(董希淼) 자오롄금융 수석연구원은 13일 중국중앙방송(CC-TV)과의 인터뷰에서 “란 부장이 차입과 적자 확대를 두 차례 강조했다”며 “안정적 성장, 리스크 해소, 내수 확대, 민생 개선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맞춤 정책이 점진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5% 성장률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경제 기자회견이 연쇄 개최되는 것을 놓고 긍정적 해석도 나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경제 인식에 ‘근본적 전환’이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매튜스아시아펀드의 앤디 로스먼 투자전략가는 FT에 “시 주석은 소비자와 기업가 사이에서 신뢰를 회복하려면 정책 대응이 상당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신뢰가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비관론 측 “추가 부양책에도 ‘알맹이’ 부재”
반면 양위팅(楊宇霆) 호주·뉴질랜드은행그룹(ANZ)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모두가 숫자를 찾고 있었지만 란 부장은 우리에게 숫자를 주지 않았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지방 정부의 부채를 줄이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재정부의 거시정책은 타당하지만, 시장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짚었다. 중국 베이징 소재 투자은행 샹송앤코(Chanson & Co)의 선멍(沈萌) 이사 역시 “대다수 사람의 희망이 사라졌다”며 “10월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추가 채권 발행을 비준할 수 있겠지만, 시장은 바로 지금 신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도 “이번에 발표된 중국 재정 부양책에서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가 이전보다 강해지고 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알맹이가 없어 부양책을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크다”며 “가장 큰 비판을 받는 부분은 일정이나 규모, 세부적인 자금 사용 방법이 제시되지 않은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 경제의 가장 큰 숙제가 부채 리스크라는 점에서 이를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경기 부양책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나, 문제는 규모다. 발표되는 수준의 재정투입만으로는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어 부양효과에 대한 회의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 디플레이션 공포 현실로
최근 중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 만큼 더 큰 부양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9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0.4%)은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고, 생산자 물가도 전년 동월 대비 2.8% 하락하며 6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8월(-1.8%)보다 하락 폭이 커졌고, 시장 예상치(-2.5%)보다도 낮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중국이 산업 과잉 생산 능력과 저조한 소비 등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도한 국내 투자와 수요 감소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고,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임금을 낮추거나 근로자를 해고하면서 소비자 신뢰도를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중국 주식 시장에 대한 신뢰도까지 떨어뜨렸다. 상하이 증시는 2022년 15.13%, 2023년 3.7% 하락했고 올해 초에도 바닥을 쳤다. 최근 중국 지도부가 내놓은 부양책 효과로 단기가 급등세를 보이긴 했지만, 예전과 같은 호조를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이 같은 중국 증시 하락의 배경에는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유도 있다. 중국공산당은 2021년 중반부터 ‘공동부유’ 정책을 내놓으며 민간 기업과 교육·게임 분야 등 특정 산업을 탄압했고 2022년 3월에는 코로나19가 퍼진 상하이를 장기 봉쇄했다. 이런 ‘단호한 조처’는 공급망과 민생에 영향을 줬을 뿐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불렀고, 큰손들의 탈중국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