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2.5조 유상증자 결정 ‘일단 멈춤’, 금융당국으로 넘어간 경영권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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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고려아연 증권신고서 정정 신고 제출 요구
추진 경위 및 의사결정 과정 등 기재 미흡 판단
MBK·영풍 연합도 "편법·탈법 유상증자"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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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추진한 기습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달 30일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대한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하면서다. 이에 따라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의 과반 지분 확보를 막고, 우리사주조합에 신주를 배정해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최 회장 측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고려아연에 칼 빼든 금감원

6일 금감원은 고려아연에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청했다. 금감원은 공지를 통해 “유상증자 추진 경위 및 의사 결정 과정, 주관사의 기업 실사 경과, 청약 한도 제한 배경, 공개매수 신고서와의 차이점 등에 대한 기재가 미흡한 부분을 확인해, 투자자들의 투자 판단을 위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도록 정정 요구를 통해 보완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고려아연은 주당 67만원에 신주 373만2,650주를 발행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채무 상환에 2조3,000억원을, 시설 자금에 1,350억원을, 타 법인 증권 취득에 658억원을 쓰겠다는 계획이다. 유상증자는 일반공모증자 방식으로 진행키로 했다. 일반공모증자는 기존 주주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청약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기존 주주들이 먼저 청약 기회를 받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그런데 유상증자 소식이 전해진 당일 고려아연 주가는 하한가로 직행했고, 지난달 31일에는 장중 한때 83만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52주 신고가(154만3,000원)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에 금감원은 이달 1일 고려아연과 유상증자 주관사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앞서 지난달 11일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추진할 때 신고서에 “공개매수 이후 재무구조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는데, 그 당시 이미 유상증자 계획을 짜고 있었음에도 이를 기재하지 않았다면 주요 사항 누락 및 허위 사실 기재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4일에는 미래에셋증권뿐 아니라 유상증자의 공동모집주선을 담당한 KB증권도 금감원의 조사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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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영풍 연합, 유상증자 불법성 강조

시장에서도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이 기존 주주의 이익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최 회장 개인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공개매수 자금 조달 부담을 기존 주주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주식 수가 늘어나면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이 희석돼 지분 가치가 내려가고 주가도 떨어진다. 아울러 시장은 고려아연이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택한 것도 불법성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특정 우호 주주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3자 배정 유상증자는 주주 평등의 원칙에 위배돼 대부분 법원으로부터 제동이 걸린다”며 “이를 피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선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MBK·영풍 연합의 반발도 격화하고 있다. MBK·영풍 연합 측은 고려아연이 형식상 공모 방식을 취했더라도 경영권 방어 목적이 다분해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우리사주조합 등 우호 주주들이 낮은 가격으로 증자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경영권 분쟁에 대응하려는 ‘꼼수 증자’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공모가인 67만원은 현재 주가 기준으로 기준 주가에 할인율 30%를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최종 공모가는 청약일 전 과거 3~5거래일까지의 가중산술평균주가에 할인율 30%를 적용해 산정된다. 대규모 유상증자로 인한 주가 하락을 고려하면 오는 12월 청약 시점 공모가가 50만원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주가가 70만원 밑으로 떨어지면 공모가가 50만원을 하회한다.

MBK·영풍 연합 측 한 관계자는 “유상증자 공모가가 경영권 분쟁 이전 주가보다 낮게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최 회장의 우호 주주들이 헐값에 지분을 살 기회를 열어준 편법·탈법 유상증자”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면에 고가에 지분을 취득한 기관 및 일반 주주들은 지분율 희석의 희생양이 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1인당 배정 주식 수를 제한한 것도 MBK·영풍의 지분율 희석을 노린 것으로 평가했다. 최 회장 측 지분율도 같이 희석되지만 우리사주조합 배정 물량이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합류하면 양측의 지분율이 역전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상증자 반대 의견 없었다?

현재 고려아연은 이사회 의사록을 허위로 기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발단은 고려아연이 이사회를 열어 유상증자를 결정했던 지난달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이사회 의장인 최 회장을 비롯해 경영권 분쟁 중인 장형진 영풍 고문 등 모두 13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다.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를 결의한 뒤 증빙 서류로 투자자들에게 공개한 ‘이사회 의사록’을 보면, 지난달 30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타워 고려아연 본사 15층 회의실에서 열린 이사회엔 최 회장과 장형진 영풍 고문 등 이사 11명이 참석했다. 사외이사인 성용락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과 기타비상무이사인 김우주 현대차 본부장 등 이사 2명은 불참했다.

최 회장과 장 고문 도장이 찍혀있는 의사록엔 “최윤범 의장이 유상증자를 승인해 줄 것을 제의하자, 출석이사들은 의안을 신중히 검토한 후, 장형진 이사를 제외한 나머지 출석이사 전원의 찬성으로 유상증자 승인을 결의했다”며 “장형진 이사는 특별히 반대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고 기재돼 있다.

문제는 이날 이사회에 화상으로 참여한 장 고문이 유상증자 반대 입장을 명확하게 밝혔다는 점이다. 영풍 측은 “이사회에서 유상증자에 반대하는 이사는 거수하라고 해 장 고문이 화상을 통해 어깨 위로 손을 들어 반대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혔다”며 “이사회 의사록은 투자자들이 보는 서류인 만큼 정확하게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고려아연 쪽이 장 고문도 마치 유상증자에 반대하지 않았던 것처럼 읽히도록 이사회 의사록을 왜곡해 작성했다는 게 영풍의 주장이다.

게다가 장 고문 쪽이 지난 1일 고려아연에 이사회 의사록을 정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고려아연은 의사록에 문제가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의사록에 장 고문을 빼고 다른 이사들이 유상증자에 찬성했다고 기재했고, ‘장 고문이 반대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는 건 그가 이날 이사회에서 구두로 유상증자에 반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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