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논의 본격화, 노사·세대 갈등 해소는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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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연금개혁에 따라 단계적으로 정년 연장 추진
기아 노사, 정년 연장 TF 구성해 내년 임단협에서 논의
동국제강은 정년 62세로 연장, 2022년에 이어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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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가 소속 공무직 근로자의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늘리기로 한 가운데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국민연금 수령 연령과 연동해 단계적으로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는 안을 추진하기로 했고, 이미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 연장을 위한 노사 협의에 착수한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 고령층의 정년 연장으로 청년 실업률이 증가할 것이란 지적과 함께 세대 갈등이 격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년 연령·단계적 추진 등 두고 노사 간 협의 본격화

6일 노동계에 따르면 최근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5일 국민의힘은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해 오는 2033년 65세로 늘리기로 했다. 이날 조경태 국민의힘 격차해소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국회 본청에서 열린 격차해소특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자는 의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연금 수령 연령에 따라 단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하자는 의견이 모였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에 맞춰 정년을 연장하자는 취지로 야당과 노동계가 내놓은 입장과 유사하다. 관련 법안은 2025년 초에 발의할 예정이다.

재계도 정년 연장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아 노사는 지난달 9일 제9차 임단협 본교섭에서 정년 연장을 위한 노사 협상안을 마련했다. 회사 상황에 맞는 방안을 찾기 위해 올해 정년 연장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내년 상반기까지 정년 연장안을 마련하고 내년 단체교섭을 통해 정년 연장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이미 정년을 늘린 사례도 있다. 지난 2022년 정년을 61세로 늘린 동국제강 노조는 올해 3월 정년 연령을 62세로 또다시 상향했다. 2년 만에 정년 연장을 추가로 단행한 만큼 향후 이보다 더 연장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진통도 만만치 않다. 몇 년 연장이 적절한지, 정년을 단계적으로 올릴지 한꺼번에 올릴지 등 세부 사항에 대한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선제적으로 정년 연장 논의에 나선 기아 노사도 정년 연령, 단계적 확대 여부 등 세부 사항에서 양측의 입장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방안을 요구하는 반면 사측은 급격한 인건비 부담 증가를 이유로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정년 연장 대신 퇴직 후 선별적 재고용을 통해 일하는 기간을 늘리자는 주장도 있어 상황을 지켜보는 기업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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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정년연장 투쟁위원회가 7월 10일 오전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현대기아차 정년연장 투쟁위원회

‘청년 일자리 빼앗는 장년층’ 세대 갈등 양상도 나타나

일부에서는 정년 연장이 기업 내 세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년 연장이 현실화할 경우, 인건비 총량을 관리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업 내 연령 구조는 역피라미드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미래의 청년 일자리를 현재의 장년층이 빼앗아 가는 모습이기 때문에 청년층의 반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한 대기업 30대 직원은 “일을 가장 많이 하고 효율성도 높은 청년층의 고용을 줄이고, 장기근속으로 근로 의욕이 떨어진 장년층만 회사에 남는 것은 생산성 측면에서 불합리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된 ’60세 정년 의무화’로 55~60세 고령층 일자리는 증가한 반면 15~29세 청년층 일자리는 감소했다. KDI 분석 결과,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는 근로자가 1명 많아지면 고령층 고용은 0.6명 증가하고 청년층 고용은 0.2명 감소한다. 실제로 정년 60세 법제화가 시행된 2016년과 2017년 청년 실업률은 9.8%로, 법 시행 이전의 7~8%보다 늘었다. 정년 연장이 곧 청년 실업률 증가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일자리를 물려줄 사람이 일을 더 하게 되면서 실업률에 기여하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고용층 고용률과 청년 실업률은 관계없어” 반론도

반면, 정년 연장이 청년 실업률과는 직결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고령층 고용률이 청년층 실업률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상호 간 부정적인 관계도 없다는 내용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오히려 일부 조사에서는 청년층이 정년 연장에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대 청년 1,000명 중 69.1%가 법정 정년을 61세 이후로 연장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정년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도 10.7%로 나타났다. 청년의 80%가 정년 연장에 찬성한 것이다.

임금 측면에서도 청년층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층, 중장년층, 노년층 : 도시의 고령화 파급 효과’ 논문에 따르면 2016년 정년 60세 연장 이후 연령별 근로자 임금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 55세~65세 고령 근로자의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하면 전체 근로자의 임금은 0.63% 감소했는데 이때 임금 감소 효과는 중장년(36~54세)층과 고령층에 집중됐다. 가장 많은 근로자가 집중된 중장년층의 임금은 0.9% 줄어들었고 고령층이 받는 돈도 1% 감소했다. 이에 반해 16세부터 34세까지 청년층 임금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중장년과 고령층의 일자리 질은 오히려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 근로자 1%포인트 상승시 고령층 정규직은 0.6% 늘어난 데 반해 비정규직은 1.8% 증가했다. 이때 중장년층도 정규직은 0.9% 감소하고 비정규직은 1.3% 늘어났다. 연구진은 “비용이 많이 드는 고령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신입을 덜 뽑기보다는 중장년층을 조기 퇴직을 장려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정년 연장으로 비고령 근로자의 임금이 높아질 것이란 일반적 예상과 달리 결국 정년 연장은 일부 근로자, 주로 고령층 정규직 근로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日 계속 고용 방식 도입, 中 70년 만에 정년 연장 추진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고령화와 생산인구 감소 속에 정년 연장은 불가피한 흐름으로 보인다. 한국과 같이 고령화를 겪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도 일제히 정년 연장에 나서고 있다. 가장 앞서가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총무성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일본 65세 이상 취업자 수는 912만 명에 달하고, 취업자 중 고령자 비율은 13.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은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근거로 정년을 정하는 데 1994년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높인 이후 지난 2013년에는 희망하는 직원은 모두 65세까지 고용해야 하는 의무를 기업에 부과했다.

일본 정부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마다 먼저 일정 기간 기업에 ‘노력할 의무’를 부과한 뒤 상당 기간이 지난 후 법적 의무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단계적 시행 절차를 거쳤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은 정년 70세를 목표로 2021년부터 기업에 65세 이상 직원이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확보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새롭게 부과했다. 다만 퇴직 후 임금을 낮추고 계약직으로 다시 고용하는 ‘계속 고용’ 방식이 대부분이다 보니 직원 입장에서는 나이에 의한 역차별로 작용한다. 하던 일을 계속하는데 월급은 큰 폭으로 깎이기 때문에 업무 의욕이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70년 만에 정년 연장에 나섰다. 지난 9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법정 퇴직 연령의 점진적 연장에 관한 결정’을 발표했다. 현재 남성 노동자 60세, 여성 간부(당정 기관·국유기업·공공기관 관리직 등) 55세, 여성 노동자 50세인 퇴직 연령을 내년부터 15년에 걸쳐 각각 63세·58세·55세로 늘리는 것이 골자다. 중국 정부는 기대 수명이 높아진 데다 신규 노동력의 교육 연한이 개혁·개방 초기의 8년에서 현재 14년으로 늘어 취업 시점 자체가 늦춰졌다는 점, 노동 인구 감소로 경제·사회 발전 활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 등을 정년 연장의 배경으로 들었다.

저출산·고령화 흐름과 양로보험 부담, 이미 정년이 60세를 넘어선 다른 나라에 비해 노동 연한이 짧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정년 연장은 필연적인 선택으로 보이지만,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가뜩이나 심각한 취업난이 가중될 것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정부가 정년 연장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진 지난 10일부터 ‘노년층이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등 비판이 줄을 이었다. 3일 뒤 전국인민대표대회 의결 소식이 보도되자 웨이보 상위 10대 인기 검색어는 순식간에 절반 이상이 ‘정년 연장’으로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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