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귀환으로 공고해진 아메리카 퍼스트, ‘호국신산’ TSMC 건재할까
"대만이 기술 훔쳐 갔다" TSMC 저격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파운드리 특성상 관세 영향 작아, TSMC도 단가 올려 대응 전망
칩 가격 상승에 IT 인플레이션 유발 우려, 트럼프 '자충수' 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귀환에 대만이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슬로건인 ‘자국 우선주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커지면서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동안 미국의 대만 방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피력함과 동시에 대만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 다만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이 TSMC의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무리한 압박을 더할 가능성은 낮다는 반론도 고개를 든다.
‘안티 대만’ 트럼프 당선에 TSMC 우려 확대
8일 대만 현지 매체 동향을 살펴보면 트럼프 당선인이 TSMC의 향후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주요 매체들은 대부분 트럼프 당선인이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를 위해 미국 현지에 건설 중인 TSMC 파운드리 공장에 대한 보조금을 줄일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운동 기간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과학법(CHIPS Act)에 비판적 입장을 내비치며 법안 수정 혹은 폐지 가능성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TSMC를 특정해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쳐 갔다”고 직격하기도 했다.
앞서 바이든 정부는 미 공장 설립 대가로 TSMC에 보조금 66억 달러(약 9조원), 대출 50억 달러(약 7조원)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650억 달러(약 91조원)를 투자해 2~4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첨단 파운드리 공장 3개를 짓고 있다. 이 가운데 애리조나 1공장은 당장 다음 달부터 4나노 웨이퍼의 공식 출하를 시작할 예정이다.
다만 이 금액은 최종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TSMC 안팎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에 더 유리한 조건을 내걸어 TSMC와 보조금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TSMC의 미국 현지 공장 설립과 관련한 조건도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애리조나에 건설 중인 TSMC 공장의 설비투자 규모 기준을 더 높이거나 최첨단 공정 사용 등을 의무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TSMC 입장에서는 대만 본토에 집중돼 있는 한정된 정예 인력을 미국으로 대거 이동시켜야 하는 리스크가 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비용과 인력 등 다양한 측면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첨단 파운드리 독점으로 타격 제한적일 것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반도체 관련 관세 인상의 가장 큰 표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 최첨단 칩 공정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고 북미 시장 매출 비중이 지난 3분기 기준 71%에 달하는 TSMC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도체 관련 관세 인상의 타깃이 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TSMC의 비용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TSMC도 파운드리 제품 가격을 높이는 식으로 맞대응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비등하다. 공급자 우위 지위를 활용해 엔비디아, AMD 등 미국 팹리스를 상대로 가격 협상력을 높여온 TSMC는 현재도 첨단 공정 제조 가격을 계속 올리고 있다. TSMC가 내년부터 양산 예정인 2나노 공정 제품의 가격은 웨이퍼 장당 3만 달러(약 4,200만원)에 달할 전망이다.
대만 주요 언론도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 관세 인상 카드를 꺼내더라도 TSMC는 그 비용을 팹리스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설 것으로 관측했다. 이 시나리오는 팹리스 역시 해당 비용을 칩 판매 가격 인상으로 대응하고 결과적으로 최종 소비자인 서버업체, IT·전자기기 제조사까지 판매가격 인상에 나서는 등의 연쇄반응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결과적으로 반도체 관세 인상이 IT 시장 전반에 걸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되레 트럼프 당선인에게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방위비 청구서 예고, 현실화할까
트럼프 2기를 맞아 대만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특히 방위비 부담에 대한 우려가 크다. 양안 갈등 문제를 경제 문제로 치환한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의 안보 지원에 대해 대만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어서다. 최근 몇 년간 미국과 대만은 긴밀히 소통하며 협력 중이었다. 대만 무력 통일도 불사하는 중국에 대항해 반중 라이칭더 정권과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고 있었는데 트럼프 측의 이런 발언이 나오면서 대만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내민 ‘대만 안전 보장’도 트럼프 당선인에겐 그저 거래 대상인 셈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주장하는 대만의 군사 지출 비용은 GDP(국내총생산)의 5~10% 수준으로, 전문가들은 비현실적이라면서도 결과적으로 대만이 방위비 예산을 확대하고 미국 무기 구매 비용도 늘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대만은 중국이 필요시엔 무력을 동원해 점령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다.
다만 대만 내부에서는 현재 대만과 미국의 관계에서 한국과 같은 수준의 방위비 문제가 제기될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대만에 주둔 중인 미군은 수십 명 규모의 군사고문단 수준에 불과하며, 이는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대규모 주둔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세 문제에 초점을 맞춘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바이쭝청 중화공급관리협회 고문은 “정치인들은 정당의 이념에 따라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트럼프는 사업가로서 미국에 유리한 것은 모두 협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당선이 확정된 후부터 취임 전까지 그가 진정한 의도를 드러낼 수 있어 트럼프의 모든 발언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의 협상 방식이 상대방에게 최대한 압박을 가한 후 약간 물러나는 전략으로 상대방의 수용을 이끌어내는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 트럼프는 중국의 반응을 살펴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