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韓 조선업과 MRO 협력 필요해”, 美 MRO시장 진출 청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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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함정시장 '존스법' 등으로 인해 경쟁력 잃어
인도·태평양 지역 패권 경쟁에서 中에 뒤쳐져
韓 조선업 언급한 트럼프, 추후 협력 논의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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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군함과 선박의 보수·수리·정비(MRO) 분야에서 한·미 간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미국이 자국 내 건조 원칙을 고수하며 함정시장이 쇠퇴하는 동안 인도·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다투는 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해군을 양성하자 세계 1위의 조선업 기술을 갖춘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미 해군의 역량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내 조선·방산업계는 향후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큰 미 함정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다른 우방국의 군함 수주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트럼프 당선인 “美 조선업, 한국의 도움과 협력 필요해”

7일 국가안보실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당선인은 윤석열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미국의 조선업이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미국의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MRO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당선인은 “이 분야의 협력에 대해서는 추후 윤 대통령과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어가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 축하 전화에서 특정 산업을 콕 집어 협력을 요청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트럼프 당선인이 조선업을 특정해 언급한 것은 그만큼 미국 내 상황이 시급하다는 의미라고 업계는 분석한다. 미국은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최대 선박 건조 역량을 지닌 나라로 평가받았지만, 최근에는 높은 제조 비용과 인건비 등으로 인해 경쟁력을 잃었다.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현재 미 해군에 필요한 함정의 MRO는 40% 정도만 제때 완료될 정도로 지연이 심각한 상황이다. 숙련 노동자가 부족한 데다 정부가 보유한 조선소 4곳의 MRO 역량이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의 선박 건조 점유율은 0.13%에 그쳤다. 

조선업과 해운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제정된 ‘존스법(Jones Act)’에 따라 자국 내 건조 원칙을 지켜오면서 기술 또한 쇠퇴했다. 존스법은 미국 내 항구를 오가는 모든 화물은 미국에서 건조되고, 미국인 선원이 탑승한, 미국 선적 선박으로 운송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며 상선과 군함에 모두 적용된다. 이로 인해 외국 조선사들은 미국 내 조선소에 투자하거나, 이를 인수해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에 대해 CRS는 “미 해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상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 직면했다”며 “일부 선박은 미국 밖 건조를 허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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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미국 필리조선소/사진=한화오션

“美 해군, 中에 수적 열세 극복하려면 韓 등과 협력해야”

조선업의 경쟁력 하락은 인도·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 해군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6월 공개한 ‘초국가적 위협 프로젝트’ 보고서에서 “중국이 빠른 속도로 해군을 증강하는 가운데 미국의 해군력은 약해지고 있다”며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이 운영하는 전투함이 234척으로, 미 해군의 219척(군수·지원 함정을 제외한 숫자)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해상 우위를 유지하려면 조선업이 강한 한국·일본 등 동맹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에는 불안정한 양안 관계 등 인도·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정학적 구도 속 미·중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미국 정부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지난달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강대국 간 경쟁에 관한 미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해군 역량 강화의 시급성을 언급했다. 그는 “근래 중국의 도전이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는 인식이 있다”며 “지금은 해군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 해군 함정의 설계와 건조 속도를 높이는 것은 향후 10년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미국은 조선업의 국제 경쟁력 상실이 장기적으로 해군 전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인식 하에 대안을 모색해 왔다. 우선 2025년 시범 사업으로 외국 조선소에 함정 수리와 유지보수를 맡기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카를로스 델 토로 해군 장관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찾았고 8월에는 한화오션이 국내 조선소 최초로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시라의 창정비 사업을 수주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제56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는 두 나라 국방장관이 “최근 미 해군과 한국 조선소가 체결한 MRO 계약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美 MRO 시장 20조원 규모, 고부가가치 군함 수주해야

트럼프 당선인의 협조 요청에 한국 조선업계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모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해군 함정 MRO 시장의 규모는 2024년 577억6,000만 달러(약 78조원)에서 2029년 636억2,000만 달러(약 88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이 가운데 미국 시장의 규모만 연간 약 20조원을 차지한다. 국내 조선사 중에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지난 7월 미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해 현지 함정 MRO 시장에 진출한 바 있다. 

이미 올해 8월 4만톤급 함정 월리 쉬라함의 창정비 사업을 수주한 한화오션은 거제사업장에서 4개월 간의 정비 작업을 진행한 뒤 내년 1월 미 해군 측에 함정을 인도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 6월에는 미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한화오션은 “존스법에 따라 미 방산시장 진출을 위해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며 “향후 이곳에서 MRO 사업을 진행하고 향후 상선이나 군함 건조도 하겠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한화오션 미국법인은 해양 플랜트, 시추까지 아우르며 해양 사업 전반에 대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한화오션보다 앞서 미 해군과 MSRA를 체결한 HD현대중공업은 이미 필리핀 함정 MRO 시장에 진출해 기반을 닦았고 최근에는 호주와 미국에 함정을 납품하는 오스탈 조선소 인수에도 공을 들였다. 그러나 지난 8월 미 해군의 첫 MRO 사업 입찰 제안을 거절했다. 이제껏 해외 조선소 인수를 비롯해 MRO 사업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과는 상반된 행보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해당 사업이 주로 보급선이다 보니 사업성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왔다”며 “MRO 사업과 관련해서는 보다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탄약과 식량 등을 싣는 군수지원함 MRO는 수익성이 크지 않다. 실제로 한화오션이 수주한 미 해군 MRO 사업은 200억원 규모로 업계에서는 이익이 거의 남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기업이 미 함정 MRO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일본처럼 항공모함·구축함·잠수함 등 고부가가치 군함을 수주해야 한다. 일본은 미 7함대가 주둔하는 전략적 요충지 요코스카 해군기지를 중심으로 미 항공모함과 구축함, 잠수함 등의 MRO를 맡고 있다. 올해에만 니미츠급 항공모함인 USS 로널드 레이건, 이지스 구축함인 USS 밀리어스와 USS 벤폴드 등의 MRO를 마쳤다. 

문제는 해군 함정 MRO의 경우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에 보안이 필요한 함정의 MRO는 일본에 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항공모함과 이지스 구축함 등 수익이 큰 고부가가치 함정의 MRO는 일본이 전담하고, 일본에서 소화할 여력이 없어 남는 물량을 국내 업체들이 수주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더욱이 군사적 동맹으로서 한·미 관계보다 미·일 관계의 신뢰가 더 두터운 데다 해군기지도 일본에 위치해 함대를 운용하기 편리하다는 점도 강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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