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지형 뒤흔드는 MZ 남성 표심, 보수화보다는 ‘합리화’
도널드 트럼프, 남초 인기 유튜브 출연해 환심
젊은 남성층, 경제·정치적으로 소외돼 있다 느껴
‘정권 안정’아닌 ‘심판’에 무게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한 건 ‘매노스피어(manosphere·남초 커뮤니티)’의 지지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트럼프 당선인이 비주류로 치부되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젊은 남성 유권자의 환심을 사는 데 공을 들였고, 이에 민주당에 불만이 큰 청년층이 화답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20대 남성(이대남)이 강경우파 정당의 핵심 지지 세력으로 떠오르는 등 ‘젊은 세대는 무조건 좌파’란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주요 지지 세력은 ‘젊은 남성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전날 대선 개표 중인 애리조나주에서 승리를 확정하며 선거인단 11명을 마지막으로 확보했다. 최종적으로 선거인단 538명 가운데 312명을 확보해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226명)를 이겼다. WSJ는 이날 ‘막내아들인 배런 트럼프가 아버지를 남초 커뮤니티에 연결했다’는 기사로 트럼프 당선인의 주요 지지 세력인 젊은 남성 문화를 조명했다. 음담패설과 폭력, 거친 장난 등 온라인 콘텐츠를 즐기며 비디오 게임과 암호화폐에 관심이 많은 젊은 남성의 이른바 ‘브러돔’(형제집단)이 트럼프 당선인의 핵심 지지 세력이란 설명이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8월 배런의 권유로 유명 게임 스트리머 애딘 로스의 라이브방송에 출연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당선인의 오랜 친구인 데이나 화이트 종합격투기단체 UFC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젊은 남성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인물들도 트럼프 지지를 호소했다.
이 같은 구애는 젊은 남성의 투표로 이어졌다. CNN과 NBC 등의 합동 출구조사에서 18~29세 남성의 트럼프 지지율은 49%, 30~44세 남성은 53%로 모두 해리스를 앞섰다. AP통신이 대선 당일까지 8일간 실시한 설문조사(AP보트캐스트)에선 더 극명한 차이를 나타냈다. 30세 미만 남성의 트럼프 지지율은 56%로 해리스 지지율보다 14%포인트 높았다. 지난 대선과 비교하면 흑인 18~29세 남성의 공화당 지지율이 11%에서 31%로, 라틴계는 25%에서 38%로 급등했다.
유럽 극우 열풍 뒤에도 이대남, 역차별 인식 크게 작용
이대남 등 MZ세대 남성을 중심으로 한 탈좌파 현상은 유럽에서도 두드러지는 추세다. 최근 젊은 남성은 유럽 강경 우파의 핵심 지지 세력이다. 이탈리아, 핀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체코 등 6개국에선 정권을 탈환했고 네덜란드도 자유당 주도로 연정이 꾸려졌다. 프랑스 국민연합(RN)도 29세 남성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를 내세워 지난 7월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벨기에,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 핀란드에는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가 고령자보다 많다.
유럽과 미국 젊은 세대의 보수화에는 기성세대의 여성 우대로 인해 자신들은 역차별받는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 보수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는 “젊은 남성들은 경제적·정치적으로 소외돼 있다”며 “이 때문에 트럼프가 발산하는 거침없는 남성다움에 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좌파·중도 정당에 대한 불신도 보수화에 한몫했다. 고물가 등 경제 문제엔 해답을 내놓지 못하면서 먹고사는 데 무관한 환경운동이나 성적소수자에 대한 과도한 보호 등 PC주의(정치적 올바름)만 강요한다는 불만이다. 또 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서 불법 이민자들이 밀려들어 저소득층 임금 하락, 치안 악화 등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가운데, 상당수 좌파 정당이 ‘인권 보호’를 명목으로 불법 이민 차단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도 불신을 키웠다. 이와 관련해 로베르토 포아 영국 케임브리지대 미래민주주의센터 이사는 “주택 구입과 창업, 부의 축적과 같은 삶의 기회에 대한 세대 간 격차가 상당하다”며 “젊은이들은 자신의 부모보다 더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양상 바뀐 韓 청년 표심, 이유는?
우리나라의 경우 단순한 보수화가 아닌 젊은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물에 대한 지지 기조가 뚜렷한 모습이다. 이는 2022년 대선과 올해 총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년 전 대선 때 국민의힘에 더 많은 표를 몰아줬던 이대남들이 올해 총선에서는 민주당 쪽으로 대거 이동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청년층은 민주당 계열 정당 지지율이 보수 계열보다 높았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당 당시 후보는 20대에서 47.6%, 30대에서 56.9%로 전체 득표율(41.1%) 대비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런 기조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이어졌다. 20대의 56.4%, 30대의 61.1%가 지역구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해 전체 득표율(49.9%)을 크게 웃돌았다.
변화가 시작된 건 지난 대선이었다. 윤석열 당시 후보는 20·30대에서도 이재명 후보와 대등한 경쟁을 펼쳤다. 청년 남성은 윤 후보를, 여성은 이 후보를 지지해 성별 차이도 두드러졌다. 이번 총선에서도 20~30대 성별 선택은 달랐지만, 남성들의 보수정당 지지철회자가 많아 대선에 비하면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 20~30대 남성이 특정 성향을 갖고 있다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표심이 특정 정당 지지보다는 후보자의 지역구 관련성이나 거대 양당 체제·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 등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년세대는 특히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진영, 이념을 떠나서 본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이전 세대와 비교해 주거나 직장 등 전반적인 여건이 불안정하다 보니 그런 이해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