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교육감, 교육을 바꾸다 ② 학생인권조례 개정의 필요성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학생인권조례 개정 시사 교권 하락으로 인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비판 커져 정치적 논리보다는 학부모, 학생 의견 반영돼야
학생인권조례가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먼저 제정된 경기도부터 개정될 예정이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가 제도화되고 나서 교육 현장의 많은 부작용이 생겼다”며 개정 의사를 내비친 것에 따른 것이다. 임 교육감 말고도 보수 교육감이 새로 당선된 강원, 충북, 대전, 대구, 경북, 부산, 제주의 경우도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거나 일부 개정될 전망이다.
사실 학생인권조례 폐지 혹은 개정을 지지하는 논거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무너지고 있는 교권과 학생 인권 사이의 균형이다. 학생인권조례가 간접 체벌은 물론이고 물리적 고통을 주지 않는 대체 체벌마저도 금지하는 바람에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등의 심각한 문제 행동을 저질러도 그것을 중단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울시교육청은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6조 1항을 폭넓게 해석해 학생에게 벽을 보고 서 있게 하는 행위도 금지했었는데, 이런 규정에 대해 교사들은 제재 수단이 불충분하다며 지속적으로 불편을 호소해왔다.
학생인권조례, 교권 침해라는 약점 드러내
실제로 최근 충남의 한 중학교에서 수업 중인 교사 뒤로 교단에 누워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학생과 상의를 탈의한 남학생이 수업을 듣는 영상이 보도되며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는데, 이는 교사의 생활지도가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교권 침해 행위가 교사의 교육권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까지 침해하기에, 법적 규제를 통해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문제 제기가 누적되자, 경기도교육청이 먼저 칼을 빼 들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28일 ‘자율·균형·미래 경기교육 소통 토론회’를 열고 ‘학생 인권과 교권의 균형 지원’이란 주제로 학생과 교사 등의 의견을 청취했다. “학생을 보호와 양육만 필요로 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부터 “교육 문제는 교육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패널들의 의견을 들은 임태희 교육감은 ”학교 안에서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보완하겠다“고 강조했다.
경기도와 달리 교육감과 시·도의회의 의견이 다른 지역도 있다. 충청남도의 경우 2020년 6월에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고, 현재 3선의 진보 성향인 김지철 충남도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 포함 충남도의회에 전체 48석 중 국민의힘이 36석을 차지하면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의 가능성이 크게 올라갔다. 이미 충청남도에서는 지난 8월부터 인권기본조례와 학생인권기본조례 폐지를 위한 주민 청구인 서명이 진행 중이다. 서울의 경우도 비슷하다. 조희연 현 서울시교육감이 보수 성향 교육감 후보들의 난립으로 인해 3선에 성공했지만, 국민의힘이 시의회를 대거 장악하면서 이미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위한 주민조례 청구인 명부가 서울시의회에 제출된 상태다.
진보 교육계, 학생인권조례 개정 움직임에 반발
이에 반발의 목소리도 일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학생 인권조례 폐지는 과거로 퇴행하자는 것“이라며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입장과 함께 사실상 인권조례 폐지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일부 지자체의 학생인권조례폐지 시도에 대해 유감“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오는 10~13일 광주에서 열리는 세계인권도시포럼에서 관련 논의가 있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실 학생인권조례의 진정한 문제점은 제정 과정에서 너무 많은 이익집단이나 정치단체들이 소위 ‘숟가락’을 얹었다는 데 있다. 일례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5조 1항은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여성 인권단체, 노동조합, 장애인 인권단체, 이주민 인권단체 등이 전부 입법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에 대해 서울교육감 후보로 나섰다 낙선한 조전혁 전 의원은 ”교육이 우선이 돼야 할 교육정책에서 교육은 없고 이데올로기가 지배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학생 교육에 대한 주권은 학부모로부터 파생한다. 교육감이 자의적으로 일반 학부모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추진하는 것은 독선이자 월권“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즉 언급된 학생인권조례 5조 1항에 근거한 3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조례 자체를 존중하라는 헌재의 취지에 맞춰 폐지보다는 개정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맞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전 제정 과정과 같이 정치 이익단체들이 지나치게 관여한 조례 규정을 만드는 것보다는 교권과 학생 인권의 조화 및 학생들 자체의 학습권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학생 교육의 주권이 파생되는 주체인 학부모들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받드는 조례의 형태로 현행 학생인권조례가 개정돼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