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에 따른 물가 상승… ‘유류세 인하’ 정부 정책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입법조사처 ‘물가 대응 정책 동향 및 향후 과제’ 보고서 발표 “단기간에 물가 상승 충격 완화, 세수 감소 등 장기적으론 신중해야” 일본과 호주는 탄력적인 세금 인하 채택, “출구 전략 펼 때 참고할 필요”
2020년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공급이 제한되면서 글로벌 물가는 치솟았다. 2021년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물류 대란이 일어난 데 이어 지난해 발생한 우크라이나-러시아 분쟁 등 고물가 국면을 더욱 악화시켰다. 팬데믹에 따른 경기 침체를 우려한 각국 정부는 대규모로 재정을 투입하고 금융 지원책을 쏟아내면서 빠른 경기회복을 가져왔지만, 그 반대 여파로 세계적인 고물가 현상을 가져왔다.
최근 미국은 7~9%대의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 긴축을 시작했고, 이에 발맞춰 한국 중앙은행 역시 5~6%대의 높은 물가상승률을 안정시키려 금리 인상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진정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고물가 상황에서 정책적 여력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은 산유국이나 기축통화국이 아니기에 국제원유 가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고,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 집약적 산업인 자동차, 화학, 반도체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고유가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 요인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유가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2021년 11월 유류세 기준세율 대비 20% 인하를 시작으로 2022년 7월 법정한도인 37%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인하 폭을 확대했다. 세계 주요국 역시 지난해 초 우크라이나-러시아 사태를 기점으로 유류 개별소비세를 대폭 인하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에서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30일 ‘NARS 현안분석 – 고유가에 따른 물가 대응 정책 동향 및 향후 과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고유가 때 유류세 인하는 비교적 단기간에 물가 상승 충격을 완화할 수 있지만, 세수 감소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외부 효과를 높일 수 있어 장기적으로 채택할 수 없다”며 “현재 유가가 다소 진정된 만큼 출구전략을 결정할 때 일본과 호주의 운영 사례는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유가에 따른 물가 상에 선제적으로 유류세 인하한 한국, 세계 주요국과 발맞춰
한국 정부는 2021년 중 국제유가가 크게 치솟자 11월 유류세 20% 인하를 시작으로 경유 유가연동보조금을 지급하고 할당관세 인하, 비축유 공동방출, 저소득층 에너지바우처 사업을 확대하면서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다. 보고서는 “다양한 정책 수단 중에서 재정투입 규모, 수혜자의 범위,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유류세 인하는 가장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대응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 역시 마찬가지로 비슷한 정책을 실시했다. 예컨대 미국 조지아·메릴랜드·코네티컷·플로리다주는 지난해 2월부터 6월까지 휘발유에 부과하는 개별소비세를 완전히 면제하는 조치를 단행했고, 세금 면제 조치는 호주(50%), 독일(46.3%), 이탈리아(34.2%)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정책으로 화물 및 여객 운송업체와 정유회사에 대한 보조금 지급, 도로세나 도로이용료 인하 등이 있다.
“한국 정부 적극적 대응으로 유류 가격 비교적 낮게 유지” 평가
보고서는 한국 정부 대응이 적절했는지 평가하기 위해 ‘벡터자기회귀모형(Vector AutoRegression, VAR)’을 적용했다. 경제적 충격이 왔을 때, 파급효과의 시기, 크기, 지속성 등을 추정해 볼 수 있어 다양한 연구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형이다. 보고서는 “고유가 상황에서 한국이 시행한 유류세 인하의 도입 시점 및 인하 폭(2021년 11월 20%, 2022년 5월 30%, 7월 37% 인하율)은 도입 시점과 인하 규모에서 소극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2021년 11월 도입 시점의 경우 세계 주요국 대부분 2022년 3월과 5월 사이에 개별소비세를 인하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빠른 대응이었다는 것이다. 대응 수준을 나타내는 세금 인하 폭을 살펴보더라도 미국의 일부 주와 호주, 독일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다른 국가에 비해 이른 시기에, 또 두 차례에 걸쳐 유류세를 단계적으로 추가 인하함에 따라 유류 제품 최종 가격의 변동 폭을 비교적 낮게 유지하였다”라고 분석했다.
세수 감소나 부자 혜택은 경계해야 “유류세 인하, 장기적으론 신중해야”
고유가는 일반적으로 국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국가 거시경제에 충격을 준다. 특히 한국 경제는 원자재와 중간재의 수입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유류 제품 가격을 관리하는 것이 산업과 경제를 관리하는 핵심 목표가 돼왔다. 정부는 고유가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를 통해 가격 개입을 하는 정책을 주로 펼쳐왔다. 유류세 인하 조치는 유류 제품의 가격에 직접적이고 단기간 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물가 상승 충격을 빠르게 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화물수송차 같은 특정 집단에 보조금을 뿌리는 식의 정책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수 감소라는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시화되거나 장기적으로 채택할 수 없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장기간 유류세 인하는 탄소중립을 주장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반하는 결과를 불러오고, 유류 사용량이 많은 부자들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더욱 많이 받는다는 한계도 있다.
물가에 연동한 유류세 인하 조치 펴는 일본과 호주 사례 참고할 필요
보고서는 “2023년 예측 불가능한 고유가 사이클이 다시 오게 되면 인하 시점 및 폭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에 대한 해답으로 일본과 호주의 제도 운영사례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며 양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은 ‘트리거 조항’을 도입해 일반휘발유의 평균 소매가격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휘발유세 특례세율의 과세를 중지하고 기본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를 운영했다. 이후 다시 연속 3개월에 걸쳐 특정한 기준 안에 머물며 특례세율을 다시 적용하도록 해 급격한 휘발유 가격 변동을 방지하는 정책 효과를 얻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호주는 매년 2회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맞춰 유류세율을 변동시키는 ‘지수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물가 상황에 연동해 유류세율을 변동시키는 유연한 체계를 갖춰 소비자의 예측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최근 유가 급등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6개월간 50% 유류세 인하라는 집중적 세제 혜택 정책을 실시했다. 단기간 예정된 정책으로 당국과 소비자 모두 빠른 판단과 대응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보고서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