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쌀 5만 톤 ‘해외 원조’에 쓰는 우리나라, 과잉 생산 대책은 어디에?
UN 세계식량계획 통해 매년 쌀 5만 톤 해외 원조, 올해로 6년차 접어들어 공급 과잉으로 남아도는 국내산 쌀, 양곡관리법 따른 정부 매입 후 원조까지 일시적 대책에 불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근본적인 시장 체질 개선 필요해
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이하 농식품부)는 올해 UN 세계식량계획(이하 WFP)을 통해 코로나19, 분쟁, 기후변화 위기 등으로 식량난을 겪는 6개국 대상으로 쌀 5만 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2018년 1월 식량원조협약(FAC, Food Assistance Convention)에 가입하며 연간 쌀 5만 톤 규모의 식량 원조를 국제사회에 공약한 바 있으며, 2018년부터 매년 5만 톤의 쌀을 식량 위기국의 난민과 이주민에게 지원하고 있다.
농식품부 정혜련 국제협력관은 “올해는 우리나라가 WFP에 긴급구호를 요청한 지 60년이 되는 해이자, 우리나라가 6년째 식량원조를 공여하는 해”라며 “우리나라는 한 세대 만에 식량원조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발전한 유일한 모범 국가로서, 앞으로도 유엔의 기아 종식(zero hunger) 목표 달성을 위하여 식량원조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식량 위기 겪는 6개국에 5만 톤 규모 쌀 지원
우리나라는 UN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식량 위기국에 매년 쌀 5만 톤을 원조하고 있다. WFP는 식량원조를 통한 개도국 경제․사회발전 도모 및 식량안보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UN 기구로, 우리나라의 분담금을 받아 정부관리양곡을 구매한 뒤 해상 및 현지 육로 운송, 배급․보관, 모니터링 등 원조 과정 전반을 수행한다. 이번 쌀 원조에 투입되는 사업비는 지난해와 동일한 518억5,700만원이다.
정부는 세계 기아 지수(Global Hunger Index)에 따른 긴급성과 우리 쌀에 대한 수용성 등을 고려, 기존 대상국인 예멘·에티오피아·케냐·우간다에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을 추가해 총 6개국에 쌀을 지원한다. 오는 22일 부산 신항에서 시리아행 원조 쌀의 출항이 출항하며 이후 울산, 군산, 목포 등의 항구를 통해 순차적으로 쌀이 운송될 예정이다. 쌀은 지원 대상국에 6∼7월 중 도착하며, 7월부터 각국 주민에게 분배된다.
코로나19, 분쟁 등에 따른 국제 곡물 가격 상승으로 전 세계 식량위기가 유례 없이 심화한 상황이다. 2022년 7월 세계식량농업기구(FAO), WFP 등 5개 국제기구가 공동 발간한 ‘세계 식량안보 및 영양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세계 기아 인구는 8억2,800만 명으로 2020년 대비 4,600만 명이 증가했다. 전 세계 인구의 9.8%가 기아로 고통받고 있는 셈이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긴급 식량 지원이 필요한 개도국에 대해 식량 원조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국내 쌀 과잉 공급, ‘남아도니까 준다’?
정부는 매년 진행되는 쌀 원조 사업이 국내 쌀 수급 조절에 기여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쌀은 수년째 ‘과잉 공급’ 상태다. 2021년 쌀 생산량은 388만2,000톤 수준이었으며, 2022년 쌀 생산량은 전년 대비 3.0% 감소한 376만4,000톤이었다. 이 중 국내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남는 쌀은 매년 5.6%(당해년 쌀 생산량 대비) 수준이다.
2020년에 개정된 현행 양곡관리법에는 정부의 쌀 매입 요건이 존재한다. 초과 생산량이 당해년 생산량의 3% 이상으로 예상되거나 단경기 또는 수확기 가격이 평년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 정부가 쌀을 매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초 정부는 2021년산 쌀(388만2,000톤, 전년 대비 10.7% 증가)을 세 번에 걸쳐 총 37만 톤을 매입한 바 있다.
매년 해외 원조에 사용되는 5만 톤은 국내 2022년 쌀 생산량의 약 1.3% 수준에 그친다. 매년 5~6%의 잉여 쌀이 발생하는 만큼, 사실상 우리나라는 양곡관리법에 따른 정부 매입 이후 ‘남아도는’ 쌀을 원조하고 있는 셈이다. 언뜻 보면 우리나라가 어려운 나라에 기꺼이 식량 잉여분을 나눠줄 수 있는 ‘여유로운’ 나라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현재 국내 쌀 시장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빠르게 침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쌀 초과 생산량에 대한 국가의 ‘매입 의무 제도화’를 놓고 양곡관리법 관련 논쟁이 오가고 있다. 현행 양곡관리법은 쌀 매입을 정부의 의무 사항으로 두지 않으며, 쌀 매입 여부와 매입 규모를 정부가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이 ‘수요량’ 또는 ‘예상 생산량’보다 3~5% 이상 더 생산되거나, 쌀값이 5~8% 이상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 전량을 의무 수매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 누구를 위한 일인가
더불어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쌀값 지지를 통해 농가 소득안정을 도울 수 있다고 판단한 반면 정부·여당은 재배면적 감소폭 둔화 및 과잉 쌀 구매에 따른 국가 재정 지출 부담 증가에 주목했다. 현 정부는 강제 매입을 시행하면 매년 5.6%(당해년 쌀 생산량 대비) 수준인 잉여 쌀이 6~16%까지 더 늘어날 수 있으며, 쌀값도 오히려 하락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양곡관리법 개정 이후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43만2,000톤의 쌀이 초과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현재 정책을 지속할 경우 정부의 재정 부담이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1조303억원으로 늘 것이라고 봤다. 올해 시장격리에 사용된 5,559억원에 약 5,000억원을 추가 투입해야 하는 셈이다. 농가 역시 과잉 생산에 따라 4~9% 수준의 가격 하락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쌀 농가 지원 필요성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쌀값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과잉 생산으로 재고가 쌓이면 농가 생계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근본적 해결책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기는 어렵다. ‘쌀’에만 초점을 맞춘 이번 개정안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겠지만, 사실상 정부 재정 부담만 늘린 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품질보다는 수량 확보가 이득이며, 다양한 농작물을 생산하기보다는 쌀을 많이 생산해 정부에 넘기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심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에서 유사한 정책이 실패한 전례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2011년 태국의 잉락 친나왓 내각은 시중 가격의 150% 가격으로 쌀을 수매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농민이 정부가 지정한 창고에 쌀을 입고한 뒤 4개월간 소유권을 유지하며, 시장 가격이 높으면 시장에 판매하고 미판매 시에는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매하는 인위적 가격 지지 제도였다. 결과적으로 제도 시행 1년 만에 태국의 쌀 생산량은 약 23% 증가했고, 태국의 쌀 수출 경쟁력은 급속도로 약화했다. 당시 태국 재무부 조사위원회는 제도 시행 2년간 쌀 수매로 인한 손실이 9조 5,000억원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쌀 시장은 매년 5만 톤이 ‘원조용’으로 사용되어도 타격이 없는 기형적 공급 과잉 상태에 놓여 있다. 수요와 공급의 왜곡이 우리나라 쌀 산업의 경쟁력을 끊임없이 약화하고 있는 것이다. 양곡관리법 개정 등 일시적 방안에 골몰하면 오히려 농가 피해만 방대해질 위험이 있다. 이젠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시장의 체질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