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다당제’의 비결은? 선례로 보는 우리나라 ‘비례대표제’가 가야 할 길

양당제 고착화로 신음하던 뉴질랜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후 문제 해결 성공 총선 앞두고 비례대표제 관련 논의 한창인 우리나라 국회, 나아갈 방향 모색 중 선례 모방할 수만은 없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적합한 선거제도 개편 방안 이뤄져야

160X600_GIAI_AIDSNote

제22대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현재,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기존 선거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개선 방향에 대한 합의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논의의 주요 쟁점은 비례대표제 의석수 조정 등을 통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이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가 ‘이슈와 논점: 뉴질랜드 의회 선거제도’ 보고서를 발간하고 뉴질랜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사례에서 우리나라 선거 제도 개편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질랜드는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해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편한 바 있다. 선거제도 개편 이후 뉴질랜드 의회는 군소정당의 의석수 증가로 다당제로의 ‘변신’에 성공했으며,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의 비례성과 정치적 대표성이 향상되는 성과를 거뒀다.

뉴질랜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과정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뉴질랜드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와 폐쇄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혼합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전국 단위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고 있다. 우리나라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상당히 유사한 형태다.

과거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만을 채택했던 뉴질랜드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의 불비례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실제 1978년부터 1984년 사이에 치러진 세 번의 선거에서 양대 정당인 국민당(National Party)과 노동당(Labour Party)의 정당 득표율은 78~80% 수준이었지만, 실제 의석 점유율은 98~99%에 달했다.

높은 불비례성은 양당제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양대 정당의 득표율이 꾸준히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의석을 양대 정당이 차지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1960년부터 1993년까지 치러진 선거에서 국민당과 노동당은 전체 의석의 96~100%를 차지했다. 양당제에 지친 유권자들은 대안 정당을 찾기 시작했지만, 단순다수대표제 하에서 제3정당이 의석을 얻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았다.

이후 뉴질랜드 내 선거제도 개혁 운동이 본격화됐고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결국 양대 정당은 이어진 총선들에서 차례로 국민투표를 약속했으며, 1990년 선거에서 승리한 국민당이 선거 제도 개편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1992년 9월에 실시된 1차 투표에서 참여자의 84.7%가 선거제도 개혁에 찬성하고, 2차 투표에서 투표자 중 53.9%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하면서 1996년 총선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사진=pexels

국회에 ‘다양성’ 불어넣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뉴질랜드의 선거제도 개편은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의 비례성, 소수집단의 대표성을 제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후 다양한 정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일례로 뉴질랜드 녹색당(Green Party)은 1990년 선거에서 6.8%의 득표율로 1석도 얻지 못했으나, 1999년 선거에서는 정당 득표율 5.2%로 총 7석(지역구 1석, 비례대표 6석)을 차지했다. 이후로도 녹색당은 꾸준히 5~11% 수준의 지지를 받으며 6~14명의 의원을 배출하고 있다.

사표가 줄어들고 군소 정당의 원내 진출이 용이해지자, 양당제였던 뉴질랜드 정당 체제는 다당제로 바뀌었다. 최근 치러진 2020년 선거에서는 노동당이 65석, 국민당이 33석으로 전체 의석의 81.7%를 차지했으며, 녹색당이 10석, ACT 뉴질랜드 정당이 10석, 마오리당이 2석을 차지했다.

원내 구성원도 한층 다양해졌다. 1993년 선거에서 21% 수준이었던 여성 의원 비율은 2020년 선거에서 48%까지 증가했다. 1993년 전체의 8% 비중을 차지했던 마오리족 의원은 2020년 선거에서 21%에 달했다. 선거제도 개편 이전에는 전무했던 아시아계 의원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20년 선거에서는 한국계부터 중국, 인도, 이란, 몰디브, 멕시코 등 다양한 국가 배경을 가진 아시아계 의원이 다수 선출됐다.

국내 상황에 적합한 선거제도 개편 필요

한편 우리나라의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2020년 제21대 총선 당시 도입됐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의석수를 지역구 의석수 및 정당 득표 비율과 연동해 각 정당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표심 왜곡을 막고 득표율만큼 지역구 의석을 얻지 못한 소수 정당의 대표성을 강화하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오히려 거대 정당이 위성 정당을 창당해 추가 의석수를 확보하면서 비례성이 약화하는 역효과를 냈다.

현재 우리나라의 비례대표 의석수는 전체 국회의원의 15.7%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비례대표 비율이 이탈리아 63.2%, 헝가리 46.7%, 뉴질랜드 40%, 일본 37.8% 등 30%를 훌쩍 웃돈다는 점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준이다. 이에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가 애초 제안했던 선거제 개편안 3개 가운데 2개에 ‘비례대표 50석 증원’(증원 시 비례대표 97석)이 포함되기도 했다.

뉴질랜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해 양당제를 해체하고 의회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의 비례성 역시 확실하게 제고됐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사실상 실패한 우리나라에서 뉴질랜드의 사례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비례대표 제도 개선에 성공할 경우 뉴질랜드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단 뉴질랜드의 선례를 무조건 모방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시대·정치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먼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따른 시대 변화, 기술 변화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행 1인 지역구 제도는 사실상 지역구 경계를 넘어 빗발치는 4차 산업혁명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이 부른 사회의 ‘상호 연결성’을 고려,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선거제도 개편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치권의 ‘인력 부족’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한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 엘리트 인력 충원이 필요하며, 이들의 활동이 특정 지역구에 매몰되지 않도록 비례제를 강화해 전국적으로 우수 정치인들을 양산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시대·정치적 현실을 반영한 선거 제도 개편을 통해 국민의 뜻이 효과적으로 반영되고, 건강한 정치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국회가 완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