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소방공무원 복지 개선, “형평성 제고 등 ‘땅 다지기’ 시작해야”
건강 이상 못 피한 소방공무원들, "제도 개선 필요하다" 외근직·내근직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격차, 급여 차이 있다지만 여성 할당제가 가져온 '딜레마', "필요한 건 절대적인 신체 능력"
소방공무원 10명 중 7명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혈압·고지혈증 등 일반 질병 비율도 높았지만 폐결핵, 난청 등 직업병의 비율도 상당했으며, 특히 신체 건강 외 정신 건강이 피폐해진 소방공무원 비율도 결코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소방공무원들을 육체적·정신적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정부 및 국회 차원에서 정책적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방공무원, 10명 중 7명이 건강 적신호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정기(특수)건강진단을 받을 소방공무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8%)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소방공무원 중 정기진단 후 건강이상자로 확인된 소방공무원의 비중은 2018년 67.4%(3만577명)에서 2022년 72.8%(4만5,453명)로 급격히 높아졌다. 건강이상자 수로만 보면 486%가 증가한 셈인데, 이는 소방공무원 정원 확충으로 정기진단 실시 대상이 36.4% 늘어난 것을 감안하더라도 높은 수준이다.
건강이상자 중 일반 질병은 3만9,211명(86.3%), 직업병은 6,242명(13.7%)이었다. 일반 질병은 고혈압·고지혈증·당뇨 등 일반 성인병과 심장·간장·신장질환 등 주요 질환을 의미하며 직업병은 폐결핵, 난청 등 소방공무원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유해 환경으로 인한 질환을 뜻한다. 시스템상 정기진단 후 직업성 관련 증상이 발견되면 사후 관리를 위해 정밀건강진단(2차)을 받을 수 있지만, 정작 소방공무원들의 정밀진단 검사율은 현저히 낮았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밀진단을 추가로 받아야 하는 4,711명 중 실제 완료한 인원은 절반가량인 2,602명에 그쳤다. 정밀건강진단 대상자 대비 실시율은 2018년 22.3%에서 2019년 77.8%로 증가했으나, 2020년 59.9%, 2021년 57.1%, 지난해 55.2%로 다시 하락하는 추세다.
정밀진단율이 낮은 이유는 소방공무원의 경우 직장인과 달리 건강진단을 받지 않아도 본인이나 소속 기관에 별다른 제재가 없기 때문이다. 정밀진단의 경우 별도로 시간을 내 추가 검진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소방공무원의 경우 참여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과 예산 부족으로 필요한 건강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밀진단이나 수시진단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지 않고 정기진단 예산의 잔액으로만 집행하는 지자체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용 의원은 “출동 및 차량 사이렌 등 장기간 높은 소음과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화재·구조 현장에서 유해성 가스나 분진을 흡입할 수밖에 없는 소방공무원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고스란히 건강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된 지 3년째이지만 10명 중 7명이 여전히 건강 위험에 놓여 있을 정도로 복지·처우 개선은 멈춰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소방공무원의 건강 위험이 지속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제도 개선 및 조기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극단적 선택 소방공무원 多, PTSD도 심해
소방공무원의 건강 문제는 이전부터 꾸준히 지적돼 온 사안 중 하나다. 지난 2017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네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한 소방공무원 4만840명 중 68.1%인 2만7,803명이 질병으로 진전될 우려가 있어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의 소견이 보여 관리가 필요한 건강이상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해인자 노출 업무에 종사하는 일반 근로자 196만5,645명 중 건강이상자가 44만4,520명(22.6%)이었음을 감안하면 소방공무원의 건강이상자 비율은 3배 이상 높은 셈이다.
아울러 소방청이 총 5만4,056명의 소방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2년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방공무원의 8.1%는 PTSD를 겪고 있었다. 특히 PTSD 외 우울증(7.6%), 수면장애(29.8%) 등 고위험군 비율이 2021년도 조사 때보다 유의미한 증가세(2~7%)를 나타냈으며, 극단적 선택 위험성이 높은 고위험군의 경우 2,906명(5.4%)으로 전년 2,390명(4.4%) 대비 1%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24시간 2교대의 중노동 및 불규칙한 생활에 의한 고혈압, 간 질환, 만성피로 등에 시달리는 소방공무원 비율도 높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방공무원 이직률도 여타 공무원 직군 대비 높은 편에 속한다. 세간에서 소방공무원을 위한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는 이유다.
이렇듯 소방공무원 내 건강이상자 비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2년의 경우 소방공무원 건강이상자 비율은 47.5%였지만, 매년 평균 5.15%p가량 증가하는 모양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소방공무원의 극단적 선택도 심각한 수위인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2012~2016년 순직한 소방공무원이 21명인 데 비해 극단적 선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공무원은 38명에 달했다. 순직한 소방공무원보다 우울증, 신변 비관 등으로 자살한 소방공무원이 더 많았다는 의미다. 특히 극단적 선택을 한 소방공무원 38명 중 과반이 넘는 21명이 신변비관, 우울증 등으로 숨졌다.
이에 전문가들은 “소방공무원의 불규칙적인 근무환경과 공무과정에서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이 소방공무원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원도 “소방청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소방공무원들을 육체적·정신적 질병으로부터 온전히 보호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소방 전문 병원을 설립하는 등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소방공무원 복지 확충, ‘조정 작업’ 우선돼야”
다만 일각에선 복지 확충 이전에 일정한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장직과 사무직에 대한 상대적인 급여 차등을 둠으로써 효율적인 예산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논의는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국민청원엔 소방공무원의 내근직·외근직 승진에 차별이 있다는 청원이 제기됐다. 자신을 현직 소방공무원이라 밝힌 A씨는 청원 글에서 “화재진압 및 구조 등 외근활동을 하는 외근직과 달리 내근직이 승진심사에서 승진을 독차지하거나 가점을 더 받아 일선의 현장직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현재 외근직 소방공무원이 내근직 소방공무원에 비해 급여가 높게 책정돼 있다. 외근직 소방공무원의 업무 강도가 더 높고 근무 시간도 더 많기 때문이다. 다만 외근직과 내근직 사이의 적절한 조율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양성평등 기조 아래 무조건적인 ‘절대 수(비율) 맞추기’도 현장 소방공무원 입장에서 애로사항이다. 실질적인 능력보다 ‘성별 할당’을 우선하는 정책이 소방공무원의 부담을 가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소방공무원의 체력검정 또한 남녀 기준이 다른 상황이다. 2023년 기준 남성의 경우 악력이 60kg 이상 나와야 10점을 얻을 수 있지만, 여성의 악력 10점 커트라인은 37kg이다. 또한 남성은 왕복 오래달리기를 78회 이상 해야 10점을 받을 수 있지만, 여성은 43회 이상이면 10점을 받을 수 있다.
혹자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조건이 다른 만큼 체력검정 기준도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방공무원에게 있어 필요한 건 ‘절대적인 신체 능력’이다. 소방공무원은 무거운 방호복을 입어야 하며, 무거운 호스를 들고 물을 뿌려야 한다. 또 들것을 들고 신속히 움직일 줄 알아야 하며, 지속적으로 체력을 소모해 가며 인명 구조 활동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남성 소방공무원 못잖은 활약을 보여주는 여성 소방공무원도 다수 있다. 이들 또한 정당한 시험을 거쳐 소방공무원으로 거듭난 ‘영웅’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 기준이 달라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힘의 차이가 현장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소방공무원 복지 확충의 시발점은 남녀 간 차등을 두지 않고 일률적인 기준 아래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공무사회의 실현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