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방식 재건축·재개발, 첫 삽 뜨기 전까진 신탁재산 담보 자금 조달 안 된다
“신탁사 책임 강화로 안정적 사업 추진 도모” 눈덩이처럼 불어난 신탁수수료, 기준 마련 필요성↑ 신탁 계약 해지 간소화 등 표준계약서도 변경
앞으로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신탁 방식으로 추진할 때 신탁사가 직접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신탁사는 이와 함께 건설사업관리를 용역 없이 직접 수행해야 하며, 법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한층 강화된 벌칙에 처한다.
국토교통부는 28일 신탁 방식 정비 사업에서 신탁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개정된 내용의 시행규정은 29일부터 시행한다.
초기사업비 등 자금 조달 신탁사가 직접 해야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신탁사는 정비 사업에 필요한 초기사업비를 비롯한 모든 자금을 조달할 때 주민들이 신탁한 부동산을 담보로 제시할 수 없다. 지금까지 정비 사업계에서는 시공사가 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납입한 입찰보증금을 대여금으로 전환하는 등의 사례가 왕왕 발생했는데, 앞으로는 이와 같은 사례를 모두 차단하겠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다만 건설사가 동의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하며, 사업추진이 확실해지는 착공 이후에는 신탁재산을 담보로 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신탁보수 산정에서는 계약의 명확성을 위해 전체 사업비의 일정 비율을 받는 단순 요율방식을 비롯해 상한액 설정, 정액 확정 등 다양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요율방식을 택하는 경우에는 토지주가 최종 지불해야 할 금액의 추정치를 명시해야 한다.
또한 발주자를 지원하고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사업 전반을 통솔하는 건설사업관리 역할은 신탁사가 직접 수행해야 한다. 외부 업체에 용역을 줄 수는 있지만, 해당 비용은 신탁사가 부담해야 한다. 신탁사의 본래 업무인 사업시행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취지에서다.
사업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도시정비법 개정도 병행한다. 정비구역 지정 전 신탁사와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신탁방식을 적용하겠다는 주민의 동의를 일정 비율 이상 확보한 후 공론화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정비사업 추진 단계에서 일부 주민이 특정 신탁사와 협약하는 등 나머지 대다수 주민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비사업이 추진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신탁사의 위법 행위에 대한 벌칙도 강화된다. 지난 10월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도시정비법 개정안에 따른 것으로, 신탁사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뇌물을 받는 등 형법을 위반했을 때 해당 신탁사 임직원을 공무원으로 간주해 그에 상응한 벌칙을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또한 전체 회의 사전 의결 규정 위반의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벌칙 규정도 신설된다. 박용선 국토부 주택정비과장은 “주민들을 대신해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게 신탁사의 역할”이라고 강조하며 “신탁사가 자사의 내실을 토대로 각종 사업비를 조달하는 것을 비롯해 사업 전반을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수수료 재협상’ 논쟁으로 사업 지체된 아파트들
이처럼 신탁사의 책임이 강조되는 배경에는 신탁 방식으로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일부 아파트에서 수수료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재건축 등이 진행될수록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지불할 만큼 신탁방식의 이점이 큰지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거워지며 사업이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신탁방식 재건축은 신탁사가 소유주들로부터 재건축 대상 토지의 일부 소유권을 이전받아 재건축 업무를 대신하는 방식으로 소유주들이 직접 정비사업의 시행 주체가 되는 기존의 조합방식과 구분된다. 수수료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2010년대부터 많은 아파트가 신탁방식을 택했다. 특히 최근 많은 재건축 단지에서 선택한 사업시행자 방식은 신탁사가 시행자로서 사업 초기부터 재건축 업무 전반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사업이 진행될수록 가구 수와 예상 분양가에 따라 수천억원에 육박하기도 하는 수수료가 큰 부담으로 떠올랐다. 향후 예상되는 분양수익(매출)에 일정 요율을 적용하는 수수료 산정 방식의 특성상 분양가가 급등하는 시장 상황에서는 신탁 수수료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들은 이중의 부담을 떠안은 셈이다.
공정한 계약체결·주민 보호 위해 표준계약서 변경
이번 발표된 개정안에 신탁사 정비사업 표준계약서 관련 내용이 포함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국토부는 신탁 재산 관리의 범위를 분명히 하고 계약 해지 절차 등을 간소화해 정비사업 대상 아파트 소유자와 신탁사 간 공정한 계약체결과 주민들의 권익 보호를 돕겠다고 밝혔다.
표준안에 따르면 신탁 계약을 맺은 주민 4분의 3 이상이 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에는 나머지 주민의 동의가 없어도 계약을 일괄 해지할 수 있으며, 신탁계약 후 2년 이내 신탁사가 사업시행자로 지정되지 못하는 경우에도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또 조합방식과 동일하게 소유권 이전고시 후 1년 내 사업비 정산 등의 절차를 완료하고 사업 완료 기한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게 했다. 이 외에 신탁 재산의 관리 및 운영, 토지 등 소유자 전체 회의 의결사항, 자금 차입 방법 등 사업 추진에 필요한 각종 사항도 계약서에 모두 기록하도록 했다.
국토부는 이번 표준계약서 및 시행규정 개정으로 신탁방식 정비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를 지우고 안정적인 정비사업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효정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관은 “기존 조합방식 이외에도 신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비사업이 추진 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개선하고 이와 함께 관리, 감독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