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태평양 도서국들의 오래된 균열과 새로운 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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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제도에서 열린 PIF, 나우루 대표단 회의장 퇴장하며 항의
쿡제도의 심해 채굴 문제, 미크로네시아 분열 등 균열 지속
호주·투발루 '팔레필리 연합', 새로운 협정 혁신 가능성 제시

[동아시아포럼]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코리아(The Policy Korea)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피지 총리이자 태평양도서국포럼(Pacific Islands Forum·PIF)의 의장을 역임한 바 있는 시티베니 라부카(Sitiveni Rabuka)가 남태평양의 섬나라 키리바시를 방문해 PIF를 탈퇴하지 않도록 설득하며 태평양 지역의 화해를 이끌어냈다.

Surfers watch the sun set after surfing along the coast of Kiritimati Island, part of the Pacific Island nation of Kiribati, 5 April 2016 (Photo: Reuters/Lincoln Feast)
사진=East Asia Forum

나우루 대표단의 돌발 퇴장이 불러온 PIF 균열

라부카 총리의 공식 방문 이후 타네티 마아마우(Taneti Maamau) 키리바시 대통령이 PIF 잔류를 표명한 가운데, 키리바시 정부는 성명서에서 이를 ‘블루 퍼시픽 패밀리의 단결 회복(the restoration of unity in the Blue Pacific family)’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를 2021년 초 미크로네시아의 5개 주가 탈퇴하면서 혼란에 빠져 있는 PIF의 분위기를 전환 시킬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쿡제도에서 열린 ‘2023 PIF 정상회의’에서 이같은 화해 분위기에 금이 갈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PIF 사무총장 내정자로 전 나우루 대통령인 바론 와카(Baron Waqa)가 임명될 것이 암묵적으로 합의됐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총장 임명안이 회의 안건으로 떠오르자, 나우루 현 대통령인 데이비드 아데앙(David Adeang)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것이다. 이에 다른 정상들은 와카의 임명에 대한 지지를 거듭 강조하며 나우루 대표단의 퇴장을 만류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와카가 사무총장으로 확정되며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이 사건으로 발생한 PIF의 균열은 여전히 잔존해 있는 상태다.

또한 멜라네시아 지역의 대부분 정상들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참에 대한 이유로 마나세 소가바레(Manasseh Sogavare) 솔로몬제도 총리는 태평양 게임 준비를 들었고, 샤를로 살와이(Charlot Salwai) 바누아투 총리는 지난해 바누아투를 강타한 사이클론 롤라(Lola)의 여파와 불신임 투표 가능성에 대한 대처를 언급했다. 파푸아뉴기니 총리인 제임스 마라페(James Marape)는 어떤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이같은 멜라네시아 지역 정상들의 불참은 PIF 내 지속적인 갈등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뿐 아니라 쿡제도 정부는 개최국으로서 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에게 주변 바다에서 채굴한 해저 단괴를 선물했는데, 이는 또 다른 갈등을 일으켰다. 쿡제도 정부는 오랫동안 심해 채굴을 지지해 왔으나, 심해 채굴은 태평양도서국 간의 지역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사안이기 때문이다. 2023년 태평양 지역 의제는 △기후 문제 △군대 배치 △태평양의 비핵화 △후쿠시마 폐수 배출 등과 같은 환경 문제가 지배했다.

균열과 갈등 이어지는 태평양 지역

사실 2021년 이후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강력한 항의에 이목이 집중된 탓에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멜라네시아 국가들은 오랫동안 폴리네시아의 지배에 대한 불만을 표명해 왔다. 실제로 미크로네시아의 분열을 촉발한 2021년 사무총장 투표에서는 멜라네시아 3개국이 미크로네시아 후보에게 표를 던져주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멜라네시아 지역 내 분쟁이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사건들도 일어났다. 지난해 8월 멜라네시아 스피어헤드그룹(Melanesian Spearhead Group·MSG)의 지도자 정상 회담에서 발생한 서파푸아 연합해방운동(United Liberation Movement of West Papua, ULMWP)의 MSG 회원 가입 거부 사건이다.

이는 장기간 지속된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으로, 사실상 지도자들이 합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에 따라 카나키(뉴칼레도니아)로부터의 독립을 지지하는 단체인 ‘카낙 및 사회주의 민족 해방 전선(French: Front de Libération Nationale Kanak et Socialiste, FLNKS)’에 대한 특별 협정을 제외하고는 MSG의 가입은 주권 및 독립 국가로만 제한해야 한다는 방침이 강화되는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MSG는 1980년대에 탈식민주의 기치 아래 설립됐는데, 현재는 파푸아뉴기니 동쪽에 있는 섬인 부건빌의 독립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MSG의 존립 이유가 되는 탈식민지에 대한 입장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협정의 혁신 가능성 보여준 팔레필리 연합

전 PIF 사무총장인 메그 테일러(Meg Taylor)가 주창한 블루 퍼시픽(Blue Pacific)은 태평양 국가들을 단순히 개별 주들의 집합체로 보는 것을 넘어 지리적 요건, 문화, 기후 문제 등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보는 개념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로는 지난해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 정부와 호주 정부의 양국 간 긴밀한 관계를 공식화하는 협정인 ‘팔레필리 연합(Falepili Union)’이 꼽힌다. 협정에는 기후 위기로 물에 잠기고 있는 투발루를 위해 호주가 매년 280명의 투발루 국민을 기후 난민으로 받아들인다는 내용과 양국 간 안보 협력을 위한 구속력 있는 조항 등이 포함돼 있다. 현재 팔레필리 연합은 최종 구조와 이행에 관한 논의를 진행 중이며 다가오는 투발루 선거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팔레필리 연합은 기존 주권 체계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광범위한 논의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사실 태평양 지역에서 주권은 영토와 독립적 지위 즉, 유·무형적 의미 사이를 오가는 유연한 개념이다. 더욱이 팔레필리 연합은 기후 변화에 중점을 둔 주권 체제로의 새로운 혁신이라 여겨지고 있으며, 태평양 지역 내외에서 발생하는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주권 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로 평가되고 있다.

원문의 저자는 케린 베이커(Kerryn Baker)로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의 태평양 담당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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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린 베이커/출처=Austalian National University

영어 원문 기사는 New sovereignties and old divisions shaping Pacific politics |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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