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1,115조원, ‘역대 1분기 최대’, 관리재정수지 75.3조 적자
기획재정부 '월간재정동향 5월호' 발표
세수진도율 23.1% 전년 대비 2.2%p ↓
신속집행으로 총지출 크게 늘어난 영향
올해 1분기 나라 살림 적자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당초 예상한 올해 연간 적자 규모의 80%를 이미 넘어선 데다, 세수 확보에도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재정 건전성에도 적색등이 켜졌다. 그간 건전 재정을 강조한 윤석열 정부가 2년 연속 스스로 내건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1분기 재정적자 역대 최대, 75조원 넘어
9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월간 재정동향 5월호’에 따르면 올해 1~3월 관리재정수지는 75조3,000억원 적자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조3,000억원이나 규모가 확대됐다.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기금(국민연금·사학연금·산재보험·고용보험)을 제외한 것이다.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크게 늘어난 이유는 세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예산집행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1~3월 누적 국세수입은 84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조2,000억원 감소했다. 부가가치세 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3조7,000억원 늘었지만 같은 기간 법인세 수입이 5조5,000억원이나 줄었다. 그 결과 1분기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은 연간 목표의 82.2%에 달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적자 기업이 늘면서 법인세 감소 폭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며 “세수 여건과 지출 스케줄에 따라 연간 목표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1분기 기준 총지출은 전년 대비 25조4,000억원 늘어난 212조2,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656조6,000억원)의 약 3분의 1을 올해 1분기 만에 지출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출 폭이 커진 것은 신속 집행 예산 지출 속도가 늘어난 탓”이라며 “신속 집행 대상 예산 252조9,000억원 중 3월까지 41.9%(106조1,000억원)를 집행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요구대로 전 국민 25만원 지원을 하게 되면 재정 건전성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나라 살림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경상수지는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3월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3월 경상수지는 69억3,000만 달러(약 9조4,664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1분기 기준 흑자 규모는 한은의 상반기 전망치인 198억 달러의 85%(168억4,000만 달러)에 달한다. 한은은 이 같은 수출 호조세에 발맞춰 연간 경상수지 전망치를 상향 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항목별로 보면 3월 기준 상품수지가 80억9,000만 달러로 12개월 연속 흑자를 냈다. 수입이 지난해 3월보다 13.1% 감소한 반면 수출은 같은 기간 3% 증가한 582억7,000만 달러를 찍었다. 수출입 품목별로는 반도체 수출액이 118억3,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34.5%나 급증해 수출 상승세를 견인했다. 반면 화학공업 제품(-11.4%)과 철강 제품(-9.4%), 승용차(-5.7%) 등 수출액은 감소했다.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3월 원자재 수입도 전년 동월 대비 18.4% 줄었다.
재정운용 실패, 교육청에 떠넘겨
지난해 국가채무도 1,126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50.4%에 달하는 규모다. 결산 기준 국가채무 비중이 GDP의 50%를 넘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임기 마지막 해이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1,067조4,000억원) 1,000조원을 돌파한 뒤 1년 만에 1,100조원마저 뛰어넘게 됐다. 정부는 국가재정법이 명시한 날(4월 10일)을 이례적으로 넘겨 이런 내용의 전년도 국가결산을 확정·발표했는데, 이 때문에 ‘총선에 불리한 내용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재정 지출을 계획보다 28조원 줄였는데도 대규모 적자를 내 논란을 사기도 했다. 정부가 지난달 11일 발표한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정부 총수입은 573조9,000억원으로, 재작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본예산상 총수입에 견줘 51조8,000억원 줄었다. 세수 추계 실패로 국세수입이 연초부터 쪼그라든 결과 예산 대비 총 56조4,000억원의 국세가 덜 들어온 데 따른 것이다.
총지출은 본예산에 견줘 28조원 줄어든 610조7,000억원이다. 예상보다 세수가 덜 들어오자 재정 지출을 공격적으로 줄인 셈이다. 예산보다 줄어든 지출 규모는 전체 예산(본예산 총지출)의 4.4% 규모이자 같은 해 GDP(2,236조3,000억원·잠정)의 1.3%에 이른다. 이에 따라 2022년 총지출(결산 기준)에 견줘 지난해 총지출은 71조7,000억원 쪼그라들었다. 그만큼 부진한 경기의 마중물 구실을 정부 재정이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기재부의 자의적 재정 운용을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은 역대 최대인 45조7,000억원 규모의 ‘불용’(예산을 편성하고도 실제로는 쓰지 못하는 돈)이다. 앞선 5년(2018년∼2022년)의 경우 불용 규모는 7조원∼12조원대였다. 지난해 대규모 불용은 세수결손 상황에서 정부가 임의로 지출을 줄인 것으로,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에 줬어야 할 재원 중 18조6,000억원이 감액됐다. 기재부가 초유의 세수부족을 추경이란 정공법을 피한 채 그 부담을 지자체와 교육청에 떠넘긴 셈이다.
미국도 재정적자 경고등
한편 재정 적자는 미국 경제에 있어서도 고질적 악재로 꼽힌다. 이는 시장 예상보다 인플레이션이 오래 지속되도록 하는 거대한 구조적 요인이기도 하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급격히 늘었다. 엔데믹으로 전환된 뒤에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따른 대규모 금리 인상이 더해지면서 이자 비용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미 CBO에 따르면 지난해 미 연방정부의 누적 재정적자는 26조2,000억 달러로 GDP의 97%에 이르렀다. CBO는 2029년에는 누적 재정적자 규모가 GDP의 116%까지 치솟을 것으로 비관했다. IMF는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가 국채 수익률을 “큰 폭으로, 또 갑작스럽게” 끌어올리고 있다면서 이는 대개 전 세계 국채 수익률 상승을 부르고,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통화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린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미국의 재정 적자가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투자은행인 스테이트스트리트의 론 오핸리 회장은 “앞으로 5년 안에 재정 적자 문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미국은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글로벌 금융계 거물들도 “미국이 재정 통제력을 잃게 된다면 이는 전 세계적 리스크” “(경기 부양 재원 부족으로) 미국이 다음 경기 침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등의 지적을 쏟아냈다. 올해 1월 ‘전미경제학회 연례 총회’에서도 경제 석학들은 ‘미국이 과도한 재정지출과 정부 부채를 방치하면 인플레이션과 국가신용등급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