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국내 철강업계, 中·日 저가 공습에 美 관세폭탄 우려까지
중국·일본 동반 저가 공습,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밀려
미국의 대중국 슈퍼 관세 변수 앞에 전전긍긍, 겹악재
누적 손실 피하기 위해 선택한 가격 인상이 발목 잡았나
중국의 저가 철강재 유입으로 설 자리가 좁아진 국내 철강업계가 미국의 ‘대 중국 슈퍼 관세’라는 변수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철강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린 중국산 제품이 한국으로 대거 밀려들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산 수입 철강재를 대상으로 반덤핑 부과 기간을 연장하거나 새로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국산에 밀려 고전하는 국내 철강업계
15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875만5,000t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2% 늘어났다. 중국의 경기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중국 내에서 과잉 생산된 물량이 국내로 대거 유입된 영향이다. 이로 인해 국내 철강업계는 저가 중국산 후판과 열연 제품 등에 밀려 고전하는 모양새다. 중국산 후판 가격은 1t당 80만원 선으로 국내 후판 유통가격 대비 20만원 이상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현대제철은 중국산 후판과 열연 제품의 반덤핑 제소를 위해 현재 시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같은 시장 상황에서 미국의 중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는 철강업계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한국은 대미 철강 수출에서 쿼터(공급 물량 제한)를 적용받고 있어 연간 수출량이 263만t으로 묶여있다. 중국산 철강이 고관세 장벽에 막혀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어도 한국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리기 어려운 구조다. 여기에 미국 판로를 잃은 중국 철강업체들이 저가를 무기로 한국 시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한국무역협회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윤진식 무역협회장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장관을 만나 한국산 철강 쿼터제의 개선을 요구했다. 중국 저가 제품에 신음하고 있는 국내 철강업계의 판로를 확대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역대급 슈퍼 엔저에 일본산 저가 공세까지
국내 철강업계에 있어 악재는 중국산 공세만이 아니다. 슈퍼 엔저 흐름이 지속되면서 최근 국내 철강기업들은 일본 기업 제품과의 가격 경쟁력에서도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한국과 제조업 중심의 수출 구조가 유사해 환율 차이가 곧 가격 경쟁력을 좌우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산과 일본산 철강재 수입량은 각각 873만t, 561만t으로 전년 대비 29.2%, 3.1%씩 늘어났다. 한국의 전체 수입 철강재 중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철강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92%에 달했다. 이같은 저가 공습은 국내 주요 철강사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포스코홀딩스의 철강 부문 영업이익은 지난해 2분기 1조원을 넘겼지만 올해 1분기에는 3,000억원대까지 떨어졌다. 현대제철의 1분기 영업이익도 558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83.3%나 감소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차지하는 일본산 철강 비중이 상당히 늘었다”며 “원자재 가격 상승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사들의 가격 인상, 수입 철강재 대량 유입 불렀나
시장에서는 최근 잇따라 철강재 가격을 인상한 것이 결국 국내 철강사들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월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열연강판 가격을 t당 86만5,000원에 유통했다. 지난해 12월 84만4,000원에서 2.5% 인상한 것이다. 지난 2월에는 t당 3만~5만원가량 더 올려 지난해 10월 수준인 90만원 안팎으로 인상하기도 했다.
열연강판은 냉연강판, 전기강판 등 거의 모든 판재류의 소재로 쓰이는 주요 철강재다. 따라서 열연강판 유통가격이 오르면 냉연강판 등 전체 철강재 값이 줄지어 올라가게 된다. 동국제강과 현대제철 역시 1월에 이어 2월에도 건설업에 주로 쓰이는 H형강 가격을 t당 5만원 인상했다.
지난해 내내 저가 수입 제품에 시달린 철강사들은 국내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 하반기 가격 인상을 자제해 왔다. 그럼에도 국내 철강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가격 인상을 택한 것은 원자재값·물류비·전기료 등 급격히 오르는 원가를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한계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산 철강재의 저가 공습에 시달리면서도 누적된 손실을 피하기 위해 고육지책을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