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수 증가에도 시름 깊어지는 알뜰폰 사업자들, 금융권 참전에 전전긍긍
가입자만 늘면 뭐하나, 망 도매대가 인하 난항
은행권의 사업 진출도 알뜰폰 생태계 위협
중소 사업자들 "KB리브엠 '상생' 못 믿겠다" 비판
최근 알뜰폰을 이용하는 가입자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중소 알뜰폰(MVNO) 사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단말기 유통법(단통법) 폐지를 선언하고 번호이동 전환지원금을 대폭 늘리면서 강점이었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금융권의 시장 참전으로 인한 ‘출혈 경쟁’에 대한 우려도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통신시장 생태계가 재편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알뜰폰 가입자 900만 명 돌파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무선 통신서비스 통계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알뜰폰 휴대폰 회선 수는 916만6,672개로 전월 대비 19만4,117개 늘었다. 점유율은 전월 15.9%에서 16.2%로 0.3%포인트 증가했다. 알뜰폰 이용자 수는 지난해 6월 800만 명을 돌파한 이후 9개월 만에 900만 명 선을 넘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LG유플러스도 따라잡을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LG유플러스 회선수는 1,094만9,107개로 전월 대비 1만3,650개 증가했다. 알뜰폰 회선은 2019년 712만263개를 기록해 3위인 LG유플러스와의 격차가 350만 개 정도였다. 이후 격차는 521만 개까지 벌어졌지만 2022년 알뜰폰 가입회선이 100만 개가량 늘면서 격차가 줄었다. 이제는 180만 개까지 좁혀진 상태다.
알뜰폰의 고질적 불편 사항도 점차 개선되는 추세다. 알뜰폰 가입자들은 고객센터 연결 문제와 결합 할인 혜택, 멤버십 혜택 부재 등을 불편 사항으로 꼽아왔다. 알뜰폰 업체들은 24시간 고객센터, 앱 고객센터, 챗봇 등을 도입해 이용자 불편 해소에 힘쓰고 있다. 헬로모바일과 세븐모바일의 고객센터 앱 가입자 수는 각각 100만 명, 50만 명을 돌파했다.
파이 줄어드는데, 사업 환경은 악화
그러나 정작 업계에서는 정부가 단통법 폐지를 비롯한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에 나서면서 알뜰폰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높다. 여기에 내년부터 망 도매대가 산정방식이 사후규제로 전환되면 중소 사업자의 고충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정부는 도매제공 의무제도를 통해 협상력이 약한 중소업체의 망 도매대가 사용을 중재해 왔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알뜰폰 사업자가 직접 통신사와 개별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알뜰폰 사업자들은 올해 최대한 망 도매대가를 낮추고, 지나친 인상을 막기 위한 정부의 사전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8일 열린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도매대가 산정 방식을 다양화하고, 데이터를 다량 선구매할 때 추가 할인이 되는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의 알뜰폰 시장 진출도 근심거리
금융권의 알뜰폰 시장 진출도 중소 사업자들에게는 근심거리다. 현재 은행 중 알뜰폰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는 대표주자는 KB국민은행이다. KB국민은행은 2019년 4월 제1호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 알뜰폰 브랜드 ‘KB리브엠’을 운영하고 있다. KB리브엠은 ▲알뜰폰 사업자 최초 5G 요금제·워치 요금제 ▲24시간 365일 고객센터(실시간 채팅상담 포함) ▲멤버십 혜택·친구결합 할인 ▲보이스피싱 예방 등 다양한 기능과 혜택을 선보이며, 시장 진입 5년 만에 시장점유율 5%에 가까운 가입자 42만 명을 모았다.
앞서 지난달 5일 금융위원회는 KB리브엠을 은행의 정식 부수 업무로 인정했다. 금융권에서 비금융사업이 정식 부수업무로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15일엔 우리은행이 ‘알뜰폰 사업 통신 사업자 제안’ 공고를 게시하며 은행권 알뜰폰 사업 진출 대열에 합류했다. KB국민은행의 관련 사업 수익성 확대와 우리은행의 향후 성과 등에 따라 신한, 하나, NH 등 다른 주요 은행도 언제든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망 도매가다. 금융권이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망 도매대가보다 낮은 수준의 요금제를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국민은행은 중소 알뜰폰 사업자와의 상생을 위해 망 도매대가의 90% 이하로는 요금제를 출시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은 KB리브엠이 이러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VIP등급이거나 프로모션을 적용하면, 실제로는 여전히 망 도매대가 70~80% 수준의 요금제를 유지 중이라는 것이다.
알뜰폰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위에 항의했더니 KB리브엠에서 바꾸는 데 시스템상 3개월이 걸린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대관절 전산시스템을 바꾸는 데 그렇게 걸릴 이유가 없지 않느냐. 결국 정식 업무 시작 초반 알뜰폰 가입자 수를 잡으려는 행동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KB리브모바일은 부수업무 지정이 확정된 후 시스템 개발에 착수해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KB리브모바일 측은 “모든 요금제를 망 도매대가 대비 90% 수준으로 운영할 계획이며, 망 도매대가 90% 미만 상품 4종은 판매를 중단할 예정”이라며 “신규 상품의 출시까지 통상 3개월 이상 소요되는 것을 고려,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요금제) 판매 중단을 유예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