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이 밀어올린 전기요금, 정치 셈법에 기업 부담만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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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전기료, 1년 만에 5,100억원 증가
6번에 걸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영향
기업 부담 불가피, 해외 이전 택하는 기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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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용 전기요금이 단기간 급격히 오른 가운데 기업들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전기를 많이 쓰는 일부 기업은 요금이 저렴한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기도 한다. 이에 일각에선 전기료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되면서 에너지 시장 구조가 왜곡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료 급등에 한국 떠나는 기업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10기의 전기로(전기로 열을 내는 화로)를 운영하는 현대제철은 지난해 전기요금이 2022년 초보다 약 5,100억원 늘었다. 현대제철은 철강사 중에서도 전기로 비중이 커 ㎾h(킬로와트시)당 전기료가 1원이 오르면 원가가 약 100억원 늘어나는데, 산업용 전기요금이 지난 2022년 2분기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총 6번에 걸쳐 (㎾h)당 총 51원이 올랐기 때문이다. 건축자재 업체 KCC글라스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21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5% 감소했다. 유리를 제조하는 화로를 하루도 쉬지 않고 가동해야 하는 상황에 전기요금이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커진 결과다.

이에 전기 사용량이 많은 일부 기업은 전기료가 싼 국가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제조업체 OCI홀딩스가 대표적이다. 전기료가 생산원가의 약 40% 차지하는 OCI홀딩스는 전북 군산 공장 설비를 전부 떼어내 2022년 말레이시아로 이전했다. 말레이시아 전기료는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동박(얇은 구리막)을 만드는 SK넥실리스와 롯데에너지머티리얼도 원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말레이시아에 공장을 지었다. 미국은 아예 저렴한 전기료를 내세워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기업이 대거 진출한 텍사스주, 조지아주의 전기요금은 지난해 ㎾h당 평균 77.6원, 83.4원으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전기료가 정치적 도구가 되면서 시장 구조의 왜곡을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이런 구조가 고착되면 향후엔 에너지 공급 자체가 문제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전반적으로 비용에 대한 문제를 풀지 못하면 전력산업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며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하는 걸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이분법적으로 나누면서 (에너지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탈원전 정책 위해 전기료 동결, 만성 적자 내몰린 한전

산업용 전기료가 인상된 시점인 2022년은 2분기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로, 한국전력의 적자를 더는 그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한전의 부채 규모는 약 203조원으로 한 달에 상환해야 하는 이자만 3,750억원이다. 하지만 6월 말 한전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조6,567억원에 불과하다.

한전이 부실해진 가장 큰 원인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가 값싼 원전 발전을 줄이고 액화천연가스(LNG)나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면서도 전기요금을 동결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h당 전력 도매가격은 원전이 55원, LNG 214원, 신재생에너지 171원이었다. 한전은 이렇게 산 전기를 ㎾h당 150원 안팎에 팔았다. LNG,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으면 전기를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태양광과 원전이 동시에 가동될 때 한전이 태양광 발전 전기를 우선 구매하도록 한 점도 재무 부담을 키우는 요소다. 원전 이용률은 이명박 정부(2008~2012년) 시절 평균 89.9%였으나 박근혜 정부(2013~2016년) 때는 81.4%로 떨어졌고 문재인 정부에선 71.5%로 낮아졌다. 전체 발전원 중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이명박 정부 때 평균 32.4%에서 박근혜 정부 29.5%, 문재인 정부 26.5%로 하향 곡선을 그렸다. 값싼 발전원인 원전의 비중은 줄었지만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전기료가 오른다’는 비판을 의식한 문재인 정부가 전기료 인상을 막으면서 한전은 2021년 2분기부터 작년 2분기까지 9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 기간 누적된 적자만 47조5,00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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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사진=삼성전자

반도체·디스플레이기업 ‘전기료 부담’에 실적 악화 우려

이런 가운데 한전이 전기요금을 재차 인상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어 기업들의 고민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전은 올해 부채 비율이 500%를 넘어선 상황에서 한전채 상환도 임박해 요금 인상을 더 미루다가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우려해야 할 처지란 입장이지만, 이 경우 국내 기업들의 실적 악화도 불가피하다.

우선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의 한숨이 짙다. 삼성전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산업용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이다. 반도체를 제조하는 공간은 정밀한 온도 제어가 필수적인 만큼 냉난방에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하는 노광장비, 이온 주입기, 식각 장비 등 첨단 장비는 대표적으로 많은 전기를 소모하는 장비로 꼽힌다.

삼성전자 사업장의 전력 사용량은 2020년 2만2,916GWh, 2021년 2만5,767GWh, 2022년 2만8,316GWh로 지속해서 증가했다. 2023년에는 9월까지 국내 사업장에서 사용한 전력량만 1만6,270GWh으로 무려 2조3,812억원의 전기요금을 납부했다. 지난해 11월 산업용 전기요금이 kWh당 평균 13.5원(대기업 대상) 인상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가 전기 사용량을 늘리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전기요금 부담이 최소 2,000억원 이상 증가하게 되는 셈이다. 여기서 한전이 올해 추가 인상을 단행할 경우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전기요금 인상은 삼성전자와 같은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기업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디스플레이는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양산 설비를 가동하는 첨단산업으로, 전기 사용량이 막대하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는 2023년 1~9월 각각 4,160GWh, 4,150GWh의 전기를 사용했는데, 이는 국내에서 각각 4, 5번째로 많은 것이다. 가뜩이나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고전하고 있는 와중에 전기료 부담까지 커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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