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이커머스 정산 기한’ 최소 10일로 가닥, 중소·영세 플랫폼 고사 우려

160X600_GIAI_AIDSNote
공정위, 제2의 티메프 사태 예방 위한 법·규제 정비
정산 기한 10~20일 단축하는 '유통업법' 개정 추진
금감원은 카드사 통해 PG사 등 관리하는 방안 검토
20240906_ecommerce_money

정부가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에 대한 후속 조치로 이커머스 플랫폼이 소비자 상품 구매 후 최소 10일 이내에 입점 업체에 대금을 정산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유력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를 두고 이커머스 업계의 반응이 엇갈렸다. 티메프 사태로 무너진 입점 업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입장이 있는 반면, 과도하고 획일적인 규제로 중소·영세 플랫폼의 유동성 확보에 제한이 발생해 결국 대기업 쏠림 현상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규모유통업법 사각지대에 있는 이커머스 규제 강화

6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티메프와 같은 오픈마켓 플랫폼이 상품 구매 확정일로부터 10~20일 이내에 입점 업체에 물품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초안을 마련했다. 이커머스 플랫폼이 정산 기간을 악용해 입점 업체에 지급해야 할 대금을 불법적으로 유용하거나 빼돌릴 가능성을 차단해 ‘제2의 티메프 사태’를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다. 공정위는 추후 업계의 의견 등을 종합해 구체적인 정산 기한을 확정할 예정이다.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르면 연 매출액 1,000억원 이상 또는 매장 면적 3,000㎡ 이상 대형마트의 경우 특약 매입과 위탁 판매의 정산 기한은 40일, 직매입은 60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이커머스 플랫폼은 판매중개업자로 분류돼 해당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티메프도 재정이 악화된 상태에서 규제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입점 업체에 지급할 대금을 돌려막으며 사태를 키웠다. 피해 판매자와 소비자들도 대금 정산 기간을 유동성 확보에 활용한 점을 사태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이에 정부는 이커머스의 정산 기한에 관한 규정을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티메프 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달 7일에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는 이커머스 업체의 대금 정산 기한을 대형마트와 같은 40일 이내로 강제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 대상을 이커머스까지 확대하는 차원이다. 이와 함께 이커머스 업체와 판매 대금 정산을 중개하는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가 대금의 일정 비율을 별도 계좌에 예치하거나 신탁, 보증 보험 가입 등을 통해 관리하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국회에서도 정산 기간을 단축하는 법안이 다수 발의됐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중 이커머스 업체의 정산 기한 단축을 담은 법안 대부분이 정산 기한을 15일 이내로 짧게 제시했다. 발의한 의원의 소속 정당에 따라 구분해 보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정산 기한을 5~10일로 설정해 7~30일로 제시한 더불어민주당보다 짧았다. 이들은 당정협의회 등에서도 정산 주기를 대폭 단축할 것을 요구했고 정부도 이를 수용해 정산 기한을 당초 검토하던 40일에서 10일로 강화했다.

과도하고 획일적 규제로 초대형 플랫폼 쏠림 우려 제기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산 기간 단축을 두고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중소 이커머스 업체 등은 정산 기한 단축이 독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벤처기업협회·코리아스타트업포럼·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한국벤처캐피탈협회로 구성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과도한 정산 기한 단축은 다양한 정산 방식을 제공하기 어렵게 만들어 정산·송금 비용에 대한 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며 “여기에 새로운 정산 시스템을 개발·운용하는 비용도 늘어나 중소 이커머스 업체의 경우 자금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중소 이커머스 업체는 초기 성장 단계에서 투자를 통해 규모를 키우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춘 사례는 사실상 전무하다. 이커머스의 사업 모델(BM)은 탄탄한 재무구조보다는 시장 선점과 고객 확보가 성공의 핵심 요인이기 때문이다. 국내 이커머스 업계 1위 쿠팡이 수년간 어마어마한 적자에도 물류 시스템, 가격 할인, 로켓배송에 공을 들이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쿠팡, 오아시스마켓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커머스 업체는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상대적으로 긴 정산 주기를 활용해 대금과 회사 운영비를 조달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10~20일의 정산 기한을 획일적으로 적용할 경우 오히려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이번 티메프 사태의 본질적 문제는 ‘정산 주기’가 아니라는 지적도 팽배한 상황이다. 전자금융법 제42조와 전자금융감독규정 제62조에 따라 전자상거래업체는 관련 업무와 실적을 정기적으로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사실상 이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적용 대상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현재로썬 정부가 추진하는 개정안의 적용 대상이 연간 중개 거래액 1,000억원 이상인 대형 이커머스 업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네이버, 쿠팡, 카카오 등과 달리 규모가 크지 않은 오픈마켓 플랫폼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관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셀러들이 입점을 꺼리면서 ‘대기업 플랫폼 쏠림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소·영세 플랫폼은 입점 업체를 확보하지 못해 고사하고 대형 플랫폼만 남는 독과점의 악순환이 시작될 것이란 주장이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알리익스프레스 등 국내법을 적용받지 않는 해외 플랫폼이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높다.

반면 일각에서는 티메프 사태 등으로 이미 이커머스 업계의 대금 돌려막기와 파산에 대한 불안이 만연한 상태에서 관련 법·제도가 정비된다면 입점 업체나 소비자의 우려와 불신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입점 업체의 입장에서는 이커머스 업체와의 거래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받게 되는 데다 판매 대금의 정산 주기도 짧아져 자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도 유리해질 것이란 기대다.

20240906_fss_pg
금융 회사의 비금융 회사 관리 체계/출처=금융감독원

핀테크·이커머스 리스크에 금융사 통해 간접 규제 추진

한편 정부는 PG사의 판매 대금 관리에 대한 규제도 강화할 방침이다.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은 핀테크·이커머스 등에서 비금융 회사의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규제의 사각지대가 생기자, 금융 회사를 통해 PG사 등 비금융 회사의 운영 리스크 관리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티메프 사태처럼 지급결제 구조로 인해 야기되는 리스크가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감독 대상인 금융 회사를 통해 최소한의 관리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내재한 위험 요인을 사전에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일 금융감독원은 ‘운영위험 관리강화 태스크포스(TF) 킥오프 회의’를 열고 ‘은행·보험·카드·정보기술(IT) 등 업권별 운영위험 관리강화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이세훈 수석부원장은 “최근 비금융 회사의 금융업 진출 확대로 PG사 결제 리스크 등 비정형적 운영위험이 금융 회사에 직접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며 “업권별로 금융 회사의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강화해 규제의 사각지대를 해소함으로써 금융 시장의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금융당국이 금융사에 관리 의무를 부여해 비금융사를 간접규제 하겠다는 뜻이다.

금감원은 올해 내 TF 등 논의를 거쳐 PG사 등 비금융 회사에 대해 금융 회사에 관리의무를 부여하는 간접관리 방식의 운영위험 규제 체계를 마련할 예정이다. 특히 티메프 사태를 계기로 카드사가 온라인 결제 위험을 통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카드사가 온라인 결제시장에서 결제 위험을 충분히 고려해 거래할 수 있도록 현행 카드사가 PG사의 계약체결 시 심사 및 선정 기준, PG사의 하위가맹점 적정성 확인 여부 등에 대한 현황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