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조에 수출 575억 달러 ‘훌쩍’, 내수 회복까지는 ‘깜깜’
무역수지 17개월 연속 흑자 행진
수출의 경제 성장 기여도 80% 넘어
자동화로 고용 정체, 낙수효과 미미
올해 10월 수출이 575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13개월 연속 증가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잠시 주춤하며 수출에 타격을 줬던 반도체가 다시 호황기에 접어들며 이같은 성적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수출 증대가 민생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어 그 배경에 눈길이 쏠린다.
반도체·자동차 산업 동시 호황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0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575억2,000만 달러(약 79조7,000억원)로 전년 동월(550억9,000만 달러) 대비 4.6% 증가했다. 이는 역대 10월 수출액 중 최대 기록이다. 1월부터 10월까지 누적 수출 금액은 5,663억 달러(잠정치)로, 올해 연간 총수출액은 2022년(6,835억 달러) 이후 역대 최대에 달할 전망이다.
품목별 수출액에서는 15대 주력 품목 중 ▲반도체 ▲컴퓨터 ▲무선통신기기 ▲자동차 ▲바이오·헬스 ▲철강 ▲석유화학 ▲섬유·가전 등 10개 품목의 수출이 증가했다. 특히 한국 수출의 핵심으로 꼽히는 반도체와 자동차가 나란히 10월 사상 최대 수출액을 기록했다. 반도체의 경우 125억 달러(약 17조3,200억원)를 기록하며 전년 동월 대비 40.3% 증가했다. AI(인공지능) 서버 신규투자 및 일반 서버 교체 수요가 확대됨에 따라 우리 기업이 생산한 고부가·고성능 메모리 제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과 DDR(더블데이터레이트)5 수출이 늘어났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자동차도 전년 동월 대비 5.5% 증가한 62억 달러(약 8조5,900억원)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기아의 카니발 하이브리드, EV3를 비롯한 신차 효과가 계속되는 가운데 하이브리드 차 수출 호조세 맞물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자동차 부품 수출액도 5.9% 늘어난 19억 달러(약 2조6,300억원)를 기록하면서 3개월 만에 증가세에 접어들었다.
철강 수출은 8.8% 증가한 29억 달러(약 4조원)를 기록하며 2월부터 8개월 연속 이어져 온 감소세를 끊었다. 또 석유화학(40억 달러, 10.2%↑)은 2개월 만에, 섬유(9억 달러, 2.5%↑)와 가전(7억 달러, 5.0%↑) 수출은 3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반면 석유제품은 유가 하락과 제품 가격 하락 등이 맞물리며 수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34.9% 감소한 34억 달러에 머물렀다.
지역별 수출에서는 9대 주요 시장 중 5개 시장에서 수출을 늘렸다. 특히 대(對)중국 수출은 1·2위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석유화학 수출이 급증하면서 2022년 9월(133억 달러) 이후 25개월 만에 최대치인 122억 달러(10.9%↑)를 기록, 8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했다. 대미국 수출은 역대 10월 중 최대 실적인 104억 달러(3.4%↑)를 기록하며 15개월 연속 월별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지난달 수입은 543억5,000만 달러(약 75조2,800억원)로 전년 동월 대비 1.7% 늘었다. 이로써 무역수지는 전년 동월(15억5,000만 달러)보다 16억2,000만 달러 증가한 31억7,000만 달러(약 4조4,000억원) 흑자를 기록하며 17개월 연속 흑자 흐름을 이어갔다. 에너지 수입이 6.7% 감소한 112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에너지 외 수입은 반도체 및 반도체 장비를 중심으로 4.1% 증가한 432억 달러(약 59조8,500억원)를 기록했다.
체감 경기는 여전히 ‘쌀쌀’
지속적인 수출 증가가 유의미한 것은 국가의 경제 성장에 수출의 비중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6월 발표한 ‘수출의 국민경제 기여 효과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1.17%p로 분석됐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36%인 점을 감안하면, 성장의 80% 이상을 수출이 견인한 셈이다. 같은 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20년대 들어 가장 높은 35.7%를 나타냈다.
문제는 연이은 수출 호조에도 국민들이 체감하는 내수 회복은 다소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수출 증가가 내수 회복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수출 대기업들의 수익 증가가 고용 증가 및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 민간의 구매력이 높아져야 하는데, 이같은 ‘낙수효과’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고용 증가율은 올해 1월 0.5%, 2월 0.9%, 3월 1.1%, 4월 2.3%, 5월 0.8%, 6월 0.2% 각각 증가하며 1% 미만의 증가율에 머물렀다. 우리 수출을 주도하는 반도체와 자동차는 모두 제조업에 속한다.
소비자 구매력도 제자리걸음
전문가들은 수출 증가가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자동화를 꼽는다. 생산 현장에 투입되는 자동화 기기가 늘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산량 조달이 가능해진 것이다. 국제로봇연맹이 발표한 ‘세계 로봇공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1,012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실질임금 감소도 체감 경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요소다. 우리나라 월평균 실질임금은 2019년(340만7,000원) 2020년(352만7,000원), 2021년(359만9,000원) 연속 증가하다가 2022년(359만2,000원) 주춤하는가 싶더니, 2023년에는 355만4,000원으로 떨어졌다. 명목임금을 소비자물가지수로 나눠 산출하는 실질 임금의 감소는 소비자들의 구매력 저하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롭 수바라만 노무라홀딩스 글로벌 거시경제 리서치 부문 대표는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시아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는 좋지 못한 유형의 흑자로, 장기적 성장 잠재력 측면에서 긍정적이지 않다”고 꼬집으며 “한국의 경우 기업의 투자 기회가 다소 제한돼 있으며, 은퇴를 앞둔 고령 인구가 저축을 늘리면서 이어진 효과”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