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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리브랜딩(Rebranding)의 명암 - 글로벌 AI연구소가 나아갈 길)에서 밝힌대로, 지난 2년 남짓 동안 조직의 글로벌화를 통한 리브랜딩을 위해 많은 시간과 인적 자원을 쏟아부어야 했다.
큰 방향성이 바뀐 것과 더불어, 회사의 인력 채용 및 관리 시스템도 큰 개혁을 겪었는데, 한 줄 요약하면, 더 이상 이런 글을 한국어로 굳이 써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될만큼 GIAI라는 조직은 탈한국, 탈아시아 작업을 진행 중이다. 딱히 한국을 비난하려는 목적에서 이런 글을 남긴다기보다는, 내 경험과 관점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어서 더 늦기 전에 탈아시아 하시는데 쓰이고, 20~30년 후에 한국이 혹시라도 'Rise again'한다면 무슨 문제를 고쳐야 하는지 깨닫는 자료로 삼았으면 한다.

추상화 (인코딩) 기반 현실 적용 (디코딩)이 불가능한 인력 시장
David이 지난주에 기고했던 3가지 타입의 수학 능력자 중 '사고력 훈련'이 된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AI에 의해 제거될 것이라는 논리를 담은 글
과 더불어 이번에는 좀 더 SIAI 교육 경험 자료를 바탕으로 왜 SIAI가 80%에 가까운 아시아 (한국) 학생들에게서 실패했는지에 대한 분석 글을 공유했다. 포인트는, 수학 지식이 아니라, 사고력 발달 부족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간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는 것 같지만, 저 글의 draft 단계에서 아래의 표현을 보고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었다.
Failed in abstraction (encoding) and application (decoding)
교과서에 있는 지식이 현실을 잘 요약한, 추상화한 지식이고, 그걸 현실에 다시 적용할려면 추상화 과정을 거꾸로 풀어내야 한다는 경험, 최소한 그런 사고 흐름이 아시아 학생들에게서 잘 보이질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거 배워봐야 어디에 써먹어요
이런 종류의 질문을 하는 공대 출신들, 경영학과 출신들을 정말 많이 봤었는데, 고교 이전 교육이나 학부 전공 교육 중에 추상화 훈련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위의 링크는 우리 SIAI의 가장 쉬운 교육 과정인 PreMSc (또는 MBA AI)의 첫 과목인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Data-based Decision Making)'의 기말고사 문제인데, 학부 시절에 배울법한 'Cobb-Douglas' 모델을 살짝 응용한 1번 문제가 위의 추상화, 역추상화의 가장 단순한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통계학의 Factor analysis 관점을 담아 기업의 성장 동력을 단 2개의 변수로 압축했고, 식의 양변에 Log를 씌우면 매우 단순한 회귀분석 형태로 문제가 바뀌도록 만들어놨다. 이렇게 간단한 수식이 현실 사정이 조금씩 바뀌는 부분에 맞춰 모델 수정을 약간씩 가하면서 특정 IT기업이 저급 상품, 저급 노동력 시장에서 어떤 채용 선택을 해야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도록 만들어놨다.
윗 링크의 2번 문제는 정부가 특정 소득 이하인 인구에게 지원금을 줘야하느냐 아니냐, 지역별로, 도시별로 달라지는 상황을 어떻게 고려해야하느냐를 역시 매우 단순한 통계 모델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접근하도록 만들어놨다.
저 수업을 첫번째로 개설하는 이유는, 기초 통계학을 가르쳐야 뒤에서 배우는 계산과학(딥러닝, 머신러닝, 인공지능, LLM...)을 배울 때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고 방식이 'A를 B에 대입'하는 형식의 단순한 '기계적 사고', '순차적 사고(Procedural fluency)'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SIAI 교육 과정을 아예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즉, 걸러낼 학생을 걸러낼려고 만들었다.
어지간하면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들려고 기출문제와 거의 똑같은 문제를 6개, 8개씩 만들어서, 1문제당 1시간씩 들여서 상세하게 저런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알려줬는데, 가산점을 제외하고 30점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10점 미만을 받은 대기업 직원들, SKY급 명문대 출신들도 많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유럽 팀 애들한테 공유했을 때 나온 질문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표현이,
Why waste time in Korea?
였다.
위의 예시로 이미 감을 잡았겠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을 한국인들이 현장에서 못 쓰는 이유는 저런 식의 인코딩-디코딩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고, 반대로 서구 시장은 저런 사고력을 잘 갖춘 인재들이 기업 내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국내에서 Y대 학부, 미국 서부의 모 대학 컴퓨터 공학 박사를 하고 실리콘 밸리에서 재직 중이셨던 한 박사님이 우리 SIAI의 교육 과정을 찾아왔다가 하셨던 말씀이, 재직하시는 회사에 컴공 출신은 자기 밖에 안 남았고, 내가 수업 중에 말하는 것처럼 지식을 적재적소에 응용해서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친구들은 빠르게 승진하고 있고,
저만 그걸 못해서 (짤리는 거 아닐까) 좀 겁납니다
라고 하신 적이 있다.
정리하면, 2022년 초에 'Why waste time in Korea'라고 들었던 그 말을 2025년이나 되어서야 실행하게 됐으니 동료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개발자 채용 → 오픈소스 플랫폼, 프리랜서, 챗GPT 결합으로 전환
SIAI 교육으로 아시아 인력 시장, 비즈니스 시장이 얼마나 큰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알게 된 것과 더불어, GIAI 조직의 인력 운용 시스템도 크게 바뀌었다.
한 줄 요약하면, 개발자 의존도를 0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이 기술력이 높은 시장일 거라고 착각했던 애들이 위의 SIAI 교육 사건들과 더불어, 내가 개발자들에게 온갖 상세한 지시를 다 해줘야 된다는 불평들을 들으면서, 도대체 한국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는 궁금증으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 회사가 가는 큰 방향이 어떻고, 그래서 특정 웹페이지 구성 방식을 어떻게 가고, 데이터 구성은 어떻게 가야할 것 같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화를 내고,
뭘 해야 되는지 딱 그것만 정리해서 알려달라
는 불평을 듣는다는 이야길 듣고 처음에는 내 인원 관리 무능력을 질타하던 애들도, 사건들을 계속 들으면서 'Why waste time in Korea?'와 유사한 표현들이 나오기 시작했었다.

위의 테이블은 방금 ChatGPT에서 뽑은 내용인데, 세부 정보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당시 우리가 찾았던 정보도 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가보다 우리 눈에 들어왔던 단어는 'Corporate-minded'라는 표현이다. 한국식으로 치면 '기획서'를 주고, 시키는대로 따라하는 문화라고 번역하면 될까?
당시 이런 자료를 보고 우리 조직이 인력을 쓰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기획서를 잘 만들어서 웹사이트가 화려한 걸로, 기능이 알차게 잘 갖춰져 있는 걸로 승부하는 조직이 아니라, 연구 기반의 고급 콘텐츠를 만들어내는데 초점을 맞춘 조직인데, 굳이 우리 업무와 큰 관련이 업는 개발자들을 대규모로 써야 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개발을 싹 다 내보내고, 테마, 플러그인 같은 지원이 탄탄하게 갖춰져 있는 오픈소스들로 방향을 옮겼다. 오픈소스들만 잘 쓰면 사실상 수십 명의 개발자들로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는 것과 거의 같은 효과가 나고, 웹 디자이너 1명만 'Strong communication'을 갖춘 분이 있으면 서비스 운영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개발이 필요한 경우엔 대부분 플러그인이 있었고, 잘 안 돌아가면 챗GPT로 받은 Code snippet을 적용하면 되는 시스템이 오픈소스들 별로 잘 갖춰져 있다. 가끔 AI 튜닝 컨설팅을 해줘야 된다고 해도, 고작 API 연동하는 정도 업무로 개발자를 써야 될 필요도 없었다.
WordPress를 쓰면서 우리가 만났던 인력들은 거의 대부분 인도와 동유럽 인력들이었는데, 위의 테이블이 완전히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큰 틀에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인도에서 직접 자기네가 플러그인을 만들어서 팔려는 애들은 좀 더 동유럽에 가까웠고, 물론 그 중에는 잘 이해를 못 해줘서 그냥 돈을 버린 경우도 은근히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내가 동유럽 이상, 서유럽 수준의 급여를 주면서 돈을 버린 것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손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오픈소스에 필요 기능이 있으면 플러그인을 개발하기로 하고, 인도에서 '생각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 팀, 아니면 동유럽에서 프리랜서 인력을 구하자는 쪽으로 회사의 인력 운용 방향이 확정됐다.
우리 GIAI에서 운영하는 2개의 Moodle 웹페이지들(GIAI LMS, SIAI LMS)은 그렇게 동유럽 담당자에게 넘어갔고, Drupal로 돌아가는 기본 웹사이트들은 동유럽과 인도의 여러 개발자들을 필요할 때마다 프리랜서로 불러와서 쓰는 방식이 됐다.
더 늦기 전에 인력, 시장, 기술에서 탈아시아해야 생존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오픈소스 플랫폼을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최근 몇 년간 오픈소스들의 발전을 보면서, 이제 한국에서 가장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들 중 하나인 네이버 카페, DC인사이드 등의 서비스들도 Drupal로 손쉽게 만들 수 있고, 방문자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서버 관리만 잘 해주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구글, 인스타그램 수준의 웹사이트 정도 되면 오픈소스만으로 운영하는게 쉽지 않겠지만, 그 외 대부분의 서비스들을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오픈소스로 만들어서 돌릴 수 있다는 것, 심지어 값비싼 클라우드도 쓸 것 없이 우리 팀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서버들을 글로벌로 묶는 것만으로 충분히 클라우드를 쓰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IT시스템을 직접 관리하는 회사이면서 정작 개발자 1명도 없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안 쓰는 조직이 됐다.
나한테는 이런 상황들이 새로웠지만, 유럽 애들은 이미 보고 들은게 많은지 뭔가 하나씩 진행될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고, 시스템을 거의 다 갖추고 나서야 나도 그 친구들과 같은 눈 높이를 갖추게 됐던 것 같다.
위의 시간 급여 단가 표를 보면 알겠지만, 'Highly independent', 'Strategic thinkers', 'Strong communication' 역량을 갖추고 있으면 시장에서 대접이 다르다. 왜? 회사가 필요한 인재들은 그들이지, '순차적 사고(Procedural fluency)'에서 벗어나지 못한 2류 인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2류 인재들은 챗GPT를 위시한 자동화 알고리즘들의 발전으로 5년 내에, 늦어도 10년 내에 대부분 교체될 것이다.
미국 간호사 협회가 수십, 수백 번의 데모를 한다고 해서 AI 간호사를 안 쓰게 될까?
위의 지식과 더불어, 지난 4년간 80%의 학생들이 좌절하고 떠나는 것을 보면서 더더욱 확신을 갖게 된 부분인데, 그간 한국이 'Fast follower' 전략을 쓰면서 성장하는데는 한국식 '순차적 사고(Procedural fluency)'가 효과적이었을지 몰라도, 중국이 그 전략을 더 낮은 노동단가로 뺏들어간 마당에 과연 얼마나 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개발자는 언어 문제만 없으면 한국보다 인도나 동남아 인력을 써도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중에 단가는 훨씬 더 저렴하다. 그럼 나처럼 한국 개발자를 버리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의 대형 IT기업들도 현재 돌리는 서비스들을 오픈소스 플랫폼과 약간의 개발 인력으로 돌릴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지면 지금보다 더 개발자들을 덜 뽑을 것이다. 그나마 검색/뉴스, 채팅이라는 핵심 기능을 잡아서 살아남은 IT기업들이나 사정이 나은 편이고, 라스트 마일을 잡은 덕분에 버티는 쿠팡을 제외한 유통 기업들이 모두 무너지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인이 더 이상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 가능한 인재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간 노사 갈등으로 힘겨워하던 현대제철이 아예 한국 사업 전체를 단계적으로 닫고, 미국으로 모든 공장을 옮길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났다. 국내 대기업들이 정치권과 노조의 괴롭힘, 복잡한 규제로 인한 불만 때문에 한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가버리면 어쩌나는 우려의 목소리가 수십년간 계속됐는데,
몇 년 안에 한국에서 위의 기사와 같은 사례가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왜? 나만 이런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다들 비슷한 깨달음을 이미 얻었고, 기업 사정에 맞춰 단계적인 출구 전략을 세울 것이라고 본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 단가 대비 역량을 못 맞춰주는 한중일을 탈출하고, Working-level은 인도와 동유럽, 고위직은 서유럽과 미국/캐나다/호주 시장에서 뽑아서 쓰는 것이 경영학 교과서에서 말하는 '혁신'이 아닐까? '혁신'을 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며?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아래의 도전을 한국에서 해 보려고 했던 것도,
인도 애들이 자기들의 문제를 깨닫고 돈 좀 있는 애들부터 자기들 문제를 해결하는데 먼저 나서는 걸 봤기 때문이다. 국가 교육 시스템과 문화가 만들어 준 굴레를 벗어나야 동유럽, 서유럽, 미국 수준의 단가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자기들 나름의 역량 '혁신'에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 것이다. 더 멀리보면 SIAI를 1년이라도 더 한국에서 운영할려고 했던 것도 한국에서 1명이라도 더 인재를 길러낼려던 도전이었는데, 조직의 글로벌 생존을 위해 이 도전을 접어야 한다니 아쉬움이 많다.
지난 몇 년간 중국에서 정부, 기업, 대학이 똘똘 뭉쳐 '탈 중국' 사고력을 갖춘 고급 수학 인재를 길러내고, 몇 년 만에 결과물로 딥시크 및 경쟁 제품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서 많이 부러웠고, 앞으로 몇 년 더 지나면 인도 애들이 저렇게 '탈 인도' 사고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낸 걸 부러운 눈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탈 한국' 사고력을 갖춘 인재를 많이 만들고 싶었는데, 내 능력 부족을 탓해야겠지.
우리 GIAI도 내 고집 때문에 비생산적인 시장에 몇 년의 시간을 더 버렸다. 다른 기업들은 좀 더 빠른 결정을 내려서 조금이라도 덜 손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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