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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언론에 논란이 된 재판의 판결 내용이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면, AI판사로 대신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각종 비난 여론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판결들이 단순한 논리에 따라 이뤄지는 것 같아보여서, 굳이 인간 판사가 필요할까 싶은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판결이라는 것이 단순히 법리에만 따르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AI라고 불리는 알고리즘이 앞 뒤의 선후 관계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인공지능'인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앞 뒤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능력이 있는 진짜 '인공지능'은 아니기 때문에, 자칫 사람의 일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재판에 선뜻 투입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이미 로톡이 변호사들에게 단순한 답변 정보를 제공해주는 방식으로 AI판사, 아니 AI변호사가 해 줄 수 있는 서비스와 유사한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변호사 협회의 뭇매를 맞은 바 있고, 미국이나 일본 정도 되는 선진국에서는 좀 더 진일보한 '리걸 테크' 서비스들이 나오고 있지만, 단순 사건에 대해 국선 변호사 정도를 대체해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재판, 진정한 인과관계를 살필 수 있는 '추론 능력'이 필요한 재판에까지 LLM 기반의 인공지능 모델이 고급 변호사를 대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도쿄 전범 재판으로 본 진짜 판사, 진짜 법 전문가의 업무
요즘 국내에서 대통령 탄핵 심판에 매우 많은 시간이 걸리는 탓에 각종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인류 역사에 기록된 재판 중에 세간의 관심을 가장 끌어모았으면서 가장 길게 걸린 재판, 그 중에서도 헌법재판소 수준의 최상위 기관이 오랜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서 내린 판결로 인구에 가장 회자되는 재판을 꼽으라면 단연 '도쿄 전범 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 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을 꼽을 수 있다.
1945년 8월 일본 천황이 전쟁 패배를 선언하고 9월에 항복 문서 조인, 10월부터 준비된 재판은 식민지였던 한국의 정부가 1948년 8월에 수립되고도 끝나지 않다가 1948년 9월에서야 결론이 났다. 전쟁 종료 후에도 약 3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승자가 패자의 황궁에 들어가서 바로 칼로 목을 따버리는 야만의 시대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당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에 대해 법 비전공자이자 법 무관심자, 굳이 따지자면 법 냉소주의자인 내 입장에서는 크게 관심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AI판사 생각이 나서 도대체 연합군 각 국의 최고 판사들이 모여서 무려 3년이나 걸려서야 겨우 세계2차 대전을 일으킨 파렴치범(?)들을 사형시키라는 뻔한 판결을 내렸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저 드라마를 열어봤다.
네덜란드 출신 판사가 미국, 영국, 소련, 호주, 중국 출신의 판사들과 전범 재판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초반부는 크게 법적인 주제가 등장하질 않지만, 재판이 지연되면서 압박 차원에서 추가된 인도 판사의 지적부터 내 시선을 끌었다.
재판 초기, 인류가 법이라는 문명의 산물을 만들어 낸 것에 더해서, 이제 대형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를 재판이라는 형식으로 처벌할 수 있을만큼 법치주의를 전세계적으로 정착시키게 됐다는 자부심을 재판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급한 미국, 영국 재판관들은 독일 항복 직후에 뉘른베르크에서 있었던 유럽 쪽 전범 재판(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Germany )처럼 속도전으로 전범에 대한 일괄 사형을 진행해야된다는 태도로 바뀐다. 유럽의 판례를 따르자는, 일종의 판례주의가 아마 그들의 머리 속에 있었을 것이다. (법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고 함부로 이야기해서 죄송하다.)
반면, 재판소장을 맡은 호주 출신 판사는 방향을 못 잡고 휘둥거리고, 드라마의 주인공인 네덜란드 판사는 무료 바이올린 선생을 자처했던 독일 출신 악기 연주자가 알고보니 A급 전범 아내의 사주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 모습도 보여주고, 딸에게 편지 쓰는 듯한 방식의 회고로 이 재판이 법적으로 완벽한 논리를 갖추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 속내도 내비친다.
특히 인도 재판관은 '전쟁 범죄'라는 죄목이 없던 시절에 저지른 범죄를 과연 범죄로 단언할 수 있느냐는 논리를 바탕으로, 아시아 국가의 전쟁 도발을 '전쟁 범죄'로 몰아서 일본 및 아시아 전체를 세계 무대에서 추락시키려는 미국 쪽 재판관들에 대한 논리적 반박을 이어나간다. 일본의 A급 전범들에 대한 빠른 사형 선고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 인도 재판관은 '고문관' 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고, 반대로 A급 전범의 가족들에게는 '구세주'와 같았을 것 같다.
날 친일파라고 욕하면 할 말이 없고, 법을 잘 아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지만, 난 당시 인도 재판관의 지적 자체는 옳았다고 생각한다. 없는 법과 논리를 억지로 만들어 전범이라는 형식으로 재판을 진행해서 사형을 시켰어야 할 것이 아니라, 살인 및 재산 손괴 등에 대한 처벌이라는 기존 형법의 논리에 따라 처벌을 받았어야 된다고 본다. 전범이라는 죄목이 아직 없던 상황이었다는 그 논리가 내가 알고 있는 법 상식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법 상식이 일반 통념과 매우 다르다는 것도 안다.
무려 3년이나 시간을 끌며 도쿄 전범 재판이 방향성을 잃자, 결국 미국 재판관들을 중심으로 한 집단이 호주 출신 재판소장을 배제하고 판결문을 완성시켜 버린다. 우리에게는 사형 선고를 받은 일본 A급 전범 몇 명을 제외하고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은 그 재판은 그렇게 깐깐하게 법리를 따지다가 결국 재판의 형식만 갖췄을 뿐, 전쟁 말기부터 예상했던 처벌 수위와 범위를 거의 그대로 갖고 와 버렸다. 재판 후에 이어진 미국(및 연합국)과 일본의 강화 조약인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아예 협의 과정을 거의 배제하고 미국이 독단적인 결정을 했다고 해도 과인이 아니다.
만약 미국이 아니라 인도가 더 많은 피와 재산을 쏟아 전쟁을 이겼다면 그 재판의 결과, 강화 조약의 내용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이 판결은 AI로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까? 그 10명이 넘는 국가 대표급 재판관들이 3년간 고민하고, 서로 논리적으로 싸우며 발전시킨 새로운 전범 재판 논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다른 전쟁이 터지면 또 거기에 맞는 논리를 개발하는데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무엇보다, 미국이 아니라 인도가 더 발언권이 있는 재판이었다면 판결 결과가 달랐을 것 같아 보이는 그 기록을 놓고, AI 알고리즘을 미국이 아니라 인도가 만들었으면 다른 판결이 나왔을 수도 있다고 하면 AI에 대한 광적인 신뢰를 보이는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법 상식과 일반 상식이 충돌할 경우에는 법 상식대로 판결해야 법치주의가 의미 있는 거 아니냐는 논리를 들이대면, 일반 상식대로 판결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 그 분들은 뭐라고 하실까? 법에 없는 내용을 'AI 판사'가 어떻게 판결하지?

한국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지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때도 느낀 거지만,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더더욱 느끼는 것은, 판사의 길을 걷는 학부 시절 친구들 중에 일부는 저렇게 노골적인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면서 완전히 다른 종류의 승진이 가능하겠다는 것이다. 저 분들은 법 논리보다 사회적 정치적인 판단이 더 중요한 자리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사법시험 성적이 가장 높은 학생들 순서로 판사로 임용되는 이유가 가장 법적으로 완벽한 논리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법의 민사상 논리가 경제학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그 도구로 경영학과에서 가르칠 회계학부터, 각종 전문 분야의 학문적, 비즈니스적 지식들이 모두 동원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시점부터는 과연 판사라는 인간이 법적으로 완벽한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할까, 그 논리에 기반하고 있는 전문 분야의 지식을 판사는 과연 얼마나 알고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그들이 내가 알고 있는 경제학의 반의 반이라도 알고 경제 논리를 따질 수 있을까 등등의 질문에 쉽게 답하기는 어려웠다.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도 어느 시점부터 판결의 완전 무결성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고, 특히 사회적, 정치적인 판단이 재판의 재료라면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법조문이 아니라 그 나라의 미래 방향성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도쿄 전범 재판에 투입됐던 판사들이 단순한 재판이 아니라 인류 사회의 질서를 다시 쓰는 재판이라고 생각하게 됐던 것,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에 따라 앞으로 인류가 다시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게 될 가능성을 차단할 수도 있다는 사명감을 가졌던 것도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역시 위의 인도 재판관은 '고문관'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바라보면, 국내에서 좌/우파들이 주장하는 것과 상당히 다른 관점으로 판결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좌파 측에서는 북한이 쳐들어 온 것도 아닌데 대통령이 국무회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계엄을 선포했고, 심지어 국회에 총기를 소지한 군인들이 난입했으니 헌법의 핵심인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저버렸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우파 측에서는 계엄령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고유 권한이고, 민주당이 수십 차례 국무위원들, 장관급 인사들을 탄핵하면서 국정을 마비시킨 것이 원인인데,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행사한 걸로 탄핵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부정선거가 있었던 것 같아서 조사하고 싶은데, 막은 것도 계엄령을 선포한 이유라고 추가한다.
난 위의 두 논리 중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리고 장담컨데, 이런 판결을 AI 판사가 내릴 경우 좌/우 어느 한 쪽에서 높은 확률로, 아니 100%의 확률로 그 AI 알고리즘을 누가 만들어는지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승복을 못 하겠다고 할 것이다. 위의 도쿄 전범 재판에서 미국이 전세계 45%의 GDP를 만들어내는 초강대국이 아니었다면, 인도가 판결의 주축국이었다면 판결의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짐작과 같은 맥락이다.
이번 계엄령 - 탄핵 사건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사회적, 정치적인 판단이 재판의 재료'라는 관점이다.
헌법재판소라는 곳이 내리는 판결이 법적인 논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회적, 정치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결정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 2030 남성들이 헌법재판소라는 조직에 불만을 갖는 첫번째 이유는 군가산점의 위헌 결정이다. 1999년 12월에 이뤄졌다. 그 때까지만 해도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대단히 제약되어 있었고, 여성의 군 복무도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점에는 역차별의 소지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런데, 2025년 지금,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제약 되어 남성들이 우월한 직장을 독점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려면 왜 공무원 시험에서 여성 합격자의 비율이 더 높은지에 대한 답변부터 먼저 해야 한다. 그 판결이 이뤄진지 10년도 지나지 않아서, 20년도 지난 지금은 더더욱, 군 복무는 2030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당시 여성의 빠른 사회적 진출 확대라는 사회적 변화 양상을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인지 했다면 아마 그 판결의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다시 10년이 더 지나면 2030 남성들이 다시 헌법소원을 내고, 군 가산점제를 부활시키게 될 지도 모른다. 전국 단위 수학 경시대회 수상자인 내가 2년 군 복무를 끝내고는 수업 시간 중에 고교 미분 공식을 떠올리질 못해서 수업을 못 따라가고, 수학 실력을 복구하는데 반 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렸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인구도 줄고 있고, 성별 차이가 직업 적합 역량에 주는 영향 밖에 남지 않은 시대에 강제 군 복무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대통령 탄핵 심판도 단순히 대통령/여당/야당이, 혹은 행정부와 입법부가 정치적인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에 사법부라는 큰 형님을 끌어들여서 누가 더 잘못했는지 고자질하고 있다는 식의 정치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있고, 앞으로 계엄령이 수시로 반복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줄탄핵을 겁 없이 할지도 모른다는 식의 사회적인 파장을 감안한 판단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관점이 당연히 더 있겠지만, 위의 생각만 해 봐도 이번 판결이 한국 사회의 다음 10년, 어쩌면 다음 100년을 가를 분수령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판결이라는 결론을 얻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판결을 AI라고 이름 붙인 패턴 인식 알고리즘이 하는 것이 맞을까? 나라의 운명이 바뀔지도 모르는데?

AI 판사, AI 변호사, AI 검사를 쓸 수 있는 범위와 한계
LLM이라는 언어 처리 모델을 조금씩만 바꾸고, 데이터의 구조도 거기에 맞춰 조절하면, 그간 인류가 언어로 정리해놨던 수 많은 지식을 굉장히 쉽게 자동화해서 처리할 수 있다. 덕분에 수학적 논리가 복잡하지 않은 대부분의 직업군이 AI에 의해 조만간 대체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어디까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오늘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LLM 모델의 안정성과 내일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LLM 모델, 앞으로 게임이론, 정보 이론 등등의 수 많은 다른 수학을 더 갖고 와서 업그레이드가 될 LLM 모델의 성능에 따라 다른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겠지만, 간단히 동네에서 치고 받고 경찰에서 잘잘못을 따지는 종류의 사건에 대한 판결은 몰라도, 위에 예시로 든 사회·정치적인 판결까지 알고리즘에 선뜻 맡기기는 쉽지 않다는데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법률 자문 서비스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로톡이 변호사 협회와 분쟁을 겪던 시절, 난 로톡이 한국 버전의 'AI 변호사'라고 농담한 적이 있다. 인간이 했지만 알고리즘을 쓰는 것만큼 저렴한 서비스였고, 알고리즘을 쓰는 것보다 조금 더 프리미엄을 지불해서 매우 내 사정에 맞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 단가가 저렴해도 되는 시장, 사회적 파장이 크게 없는 시장인만큼, 무슨 댓글부대 관리원처럼 변호사들이 시스템 뒤에서 로톡의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어주는 '알바'들이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변호사들의 자존심을 긁었기 때문에 그렇게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을 것이다.
한 때 비슷한 서비스를 생각해봤던 사람 입장에서, 주제만 투자 자문으로 바꿔서 여전히 비슷한 서비스를 고민하는 사람 입장에서, 과연 어떤 사람이 이런 'AI 자문'이라는 서비스를 쓸까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내가 1조원의 자산을 가진 사람이라면 'AI 자문'을 쓸까? 아니면 투자 전문가들이 모인 곳으로 이름 높은 헤지펀드를 찾아갈까? 당연히 나만큼, 아니 나 이상으로 수학, 통계학을 잘 하고, 그런 지식을 담은 투자 예상 보고서를 내놓는데 내가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되고, 자료에 대한 높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고급 인재를 쓰는 프리미엄을 준다고 줘봐야 수익률 1%만 떼 줘도 될 것 같아보이는 대규모 투자금을 굴리는 분들께 'AI자문'이 그렇게 큰 매력이 있을까? 고작 앞 뒤 선후 관계로 자료만 긁어서 정리해 주는 알고리즘을 믿고 1조원을 투자한다고?
10만원 투자하는 분들을 도대체 얼마나 많이 모아야 1조원 투자자 1명을 모시는 것과 같은 투자자산(AUM)을 가진 기관을 만들 수 있을까? 무려 1천만명의 소액 투자자를 모아야 한다. 근데 1조원으로는 대기업도 아니고, 10조는 되어야 (소형) 대기업 대접을 받는 걸 생각해보면, 큰 자산의 투자를 결정하시는 분들이 'AI 자문'이라는 '상담 서비스'를 쓰지 않을 것 같다는 이해가 자리 잡힐 것이다.
위의 사회·정치적인 판결을 다시 갖고 오면, AI 판사가 10만원에 대해서 판결을 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불만 없이 당사자들만 조금 불편하고 끝날 수도 있겠지만, 1조원에 대해서 판결을 내리는 상황이 되면 과연 피고, 원고가 AI 판사의 판결에 동의할 수 있을까? 단어 하나의 위치와 앞 뒤 문맥 하나의 차이에도 전체 판결의 결과가 바뀔텐데? 도쿄 전범 재판, 대통령 탄핵 심판 같은 사건들은 재산상의 파급 효과만 따져도 조 단위가 아니라 최소한 경 단위에서 금액이 결정될 판결일텐데?
적어도 난 웹사이트 개발 같은 작은 업무에도 챗GPT가 제공해주는 코드가 안 돌아갈 것이 보여서 해외에서 시급 70달러, 시급 100달러 짜리 고급 인력에게 코드를 고쳐 달라고 부탁한다. 더 큰 파장이 있을만한 일이면 아무에게도 맡기고 싶지 않고 내가 직접 작업을 할 것 같다. 더더군다나 'AI'라는 알고리즘이 인과 관계가 아니라 앞 뒤 선후 관계로 인과 관계를 착각하는 계산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 'AI 판사'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인 것 같다.
왜? 저런 결정은 알고리즘에 의한 계산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AI라고 알려진 패턴 인식 알고리즘이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은 대체해도, 지능적인 업무는 바꾸지 못한다는 논리가 이곳 법조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