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한국의 어이없는 편견들과 싸우면서

Critical thinking, logical thinking이 빠진 나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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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화두는 나도 많이 부족한 Critical thinking, logical thinking (이하 CTLT)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가르치느냐다.

교과서에서 지식을 아무리 배워봐야 써 먹으려면, 결국 논리적인 사고력을 이용해 현실과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하니까.

직원을 뽑을 때도 CTLT를 가진 직원을 뽑기 위해 노력하는데, 거의 없었고,

어떻게 해라고 상세하게 가이드를 주고 일을 시키면, 일 끝나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는 불평을 은근 듣는다.

관련해서 우리 직원 중 하나가 SNU Life에서 글 하나를 퍼와서 이래저래 묻던데, 그냥 몇몇 구절만 공유해보자.


-미국은 CEO부터 신입까지 철학도 있고, 놀땐 같이 어울리며 잡담해도 업무 들어가면 진지해짐

-한국은 부끄럽지만 구조적 사고, 논리적 사고가 전반적으로 약한 게 며칠씩 마라톤으로 협상하면 느껴짐. 미국 교육은 CTLT에 역점을 둬서인지 대화나 질문 역시 피상적이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보다 정교하고 치밀하게 만드는 과정으로 활용함

-한국은 일단 정보수집의 용도로 질문을 함. 협상 중에 계약 수량이 차이 날 경우 (ex. 한국 5백대, 미국 10년 1만대), 한국은 대개 ‘너희가 잡은 수치의 근거가 뭐임?’ 이라는 식으로 상대의 정보를 파악한 뒤 접근하려는 스탠스가 강함

-한국 정치나 언론이 문제가 생겼을 때 접근 방법 역시 놀라우리만치 logical 없음, 일단 각종 정보를 수집해서 이를 기반으로 지엽적인 비판 (ex. 식중독을 일으킨 쌀의 원산지가 수입쌀이라 그런 것 아니냐?)에 그치고, 건설적인 시스템 개선 (식중독을 유발할 수 밖에 없는 현행 위생관리규정을 재정비한다거나 이력관리의 전산 고도화같은)이 전면에 나오기 쉽지 않음

-미국은 질문이 본인의 논리에 근거해 이를 완성하고 문제해결에 초점을 두고 있음. “연간 5백대로 설정할 경우, 5년차부터 시장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물량부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별도의 옵션이 있나? 연간 5백대 미만일 경우 보상 조항은?

-미국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매우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협상하기 때문에 결과물이 그들에게는 예측 가능한 것일 확률이 높고, 우리는 일단 저지르고 진행과정에 보완 가능하다는 낙관주의, 나중에 고통

-교육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아무도 엘리트 육성에 대한 철학이 없다보니 땜질식 솔루션 위주
ex. 하버드는 고전 읽고 글쓰기 빡세게 시킨다더라 -> 그럼 우리도 고전 읽기, 글쓰기하는 핵심교양제도 베껴와서 굴려


 

이번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누가 잘못했는지만 따지고 있고, 정작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다보니 생긴,

경제학적 개념을 빌려오면 일종의 ‘시장실패’가 벌어졌다는 상황을 제대로 인지 못하는 대중들을 향해서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가 ‘인과적 사고가 없고 응보적 사고만 있는‘ 나라라는 표현을 썼다고 하더라.

 

이게 뭔가 아는 체는 하고 싶은데 사실 아는게 없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다.

자세하게 이해는 안 되지만 누군가의 말을 제일 빨리 주워담아, 그걸 기반으로 남을 꾸짖어서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

보통 논문 발표를 하나도 이해 못했는데 아는체 하고 싶어서 몸살이 났던 중국인 박사 학생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었던 태도다.

 

아래는 우리 SIAI의 F2022 1st term 시험 문제의 일부다.

총 10개의 작은 문제가 들어가 있는 문제인데, 위의 3개 문제에는 수업 중 배운 내용의 약 10% 정도가 시험 문제로 반영되어 있다.

문제의 셋팅을 보면 알겠지만, 회사에서 인사 문제로 고민하는 내용을 경제학의 비교우위론 개념을 살짝 빌려와서,

Data Science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학부시절, 경제학에서 Cobb-Douglas(C-D)를 배우면, 노동(Labor)과 자본(Capital) 투입하는 기본형 문제 밖에 못 본다.

그러다 대학원을 가면, (운이 좋은 경우에) 노동이나 자본의 품질(?)이 바뀌는 경우 같은 변형식을 풀어내는 훈련을 한다.

난 딱 요기까지만 훈련을 받고 경제학과 이별하고 계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공부했었다. 다 까먹었었지ㅋ

Data Scientist로 취직해서 출근 첫 날 우리회사 Knowledge board에서

유저들의 광고 반응율을 Factor로 잡아내는 모델을 (L,K)조합 대신 그 회사 내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Factor 3개로 확장한

그 회사만의 Cobb-Douglas 함수로 시작되는 3-4페이지 정도의 정리 글을 봤는데, 뭐랄까, 좀 쪽팔리더라.

 

나름 공부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난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구나는 생각을 했던 날이었다.

C-D라는게 그냥 (L,K) 조합 쓰는건 줄 알았는데, 이걸 이렇게 Factor analysis 스타일로 응용해서 쓴다고?

그 작업물은 일본에 있는 Data Scientist가 만들었더라. 나중에 일본까지 찾아가서 물어봤다.

그 분이 열심히 연구하는 스타일의 Data Scientist라 학벌&학위가 빵빵할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 않아서 더 놀랐다.

전공도 경제학이 아닌데, 증권사 다니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 이것저것 찾던 중에 Data Science라는 필드를 발견하고 한참 준비를 해서 취직했단다.

 

아마 한국에 있는 어지간한 경제학 박사들도 그 분이 만든 그 3-4페이지짜리 보고서 만들 수 있는

‘경제학적 직관’ & ‘경제학적 사고력’ & ‘경제학 모델링 실력’을 안 갖추고 있을 것이다.

경제학 밖으로 나가서 그렇게 Data Science에 경제학 도구를 응용해서 쓰실 수 있는 분이 있을거라고는 기대도 안 한다.

내가 못 했으니 나의 잘난 친구들도 못한다고 주장하는거 아니냐고 오해하실 수 있겠으나, 이 부분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정말 많이 뽑으면 한국 땅 전체에서, 대학 교수들 다 포함해서도 50명 뽑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저 기출문제는 나의 그 시절 좌절과 충격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반영되어 있는 문제다.

그냥 계산 필드라고 생각하고 Data Science를 가볍게 봤다가, 몇 년간 안 봤던 경제학 노트를 다시 꺼내보게 만든 사건이었거든.

 

그 이후,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내가 배운 온갖 잡학다식 지식들을 어떻게 활용하면 ‘생각의 Frame’을 짤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든 학문이 쓰는 도구가 비슷비슷하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그 도구들을 어떻게 쓰는가라는 질문에도 방식이 같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Inter-disciplinary하게 생각이 열려야했는데, 그런 마음의 창문을 하나 더 만들어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더라.

 

다시 저 문제로 돌아가면, 시험 문제를 만들어내야하는데,

  • A. Cobb-Douglas를 써서 Factor Analysis의 기초를 던져줘야 나중에 Machine Learning 수업 들을 때
    왜 Factor analysis가 모든 수리 통계, 사회 통계, 계산 통계의 밑바탕 사고라는 걸 알 수 있다는 제한 조건,
  • B. 비교우위론이라는게 실제 사회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시험 문제에서 역추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제한 조건
    (이 문제는 비교 우위론이다! 라고 가르쳐주고 시작하는게 아니라, ‘소설’ 속에 숨어있는 걸 찾아내는 훈련…)
  • C. 그 찾아낸 비교우위론이 Cobb-Douglas와 연결되는데, 단순히 연결되는게 아니라 우리가 배운 다른 문제와 연결된 상황,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복합적으로 얽혀있는지를 추론해내는 능력

이런 사고력의 깊이가 깊을수록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문제를 만들어내야했다.

하버드에서 하는 교육이니까 베껴오는게 아니라, 하버드의 철학을 보고, 우리의 철학과 사정에 맞춘 교육을 만들어내야하다보니,

근데 내가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시험문제 만들기가 그렇게 힘들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다행스럽게도 제한 조건들을 억지로라도 맞춘 문제를 뽑아낼 수 있게 됐는데, 우리 학생들이 모쪼록 시야가 열리기를 빈다.

 

한국에서 ‘전문가’ 타이틀 들고 있는 사람들도 못 풀 문제를 햇병아리 같은 우리 학생들한테 던져주는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영미권 학부 2-3학년 수준의 훈련 밖에 안 되는터라, 안 낼 수도 없다… 이건 못 하면 안 되는거니까.

언젠가 내 시야가 더 열리고, 혹은 한국에 나보다 더 시야가 열린 분이 더 좋은 교육을 공급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지금보다 더 좋은 훈련을 시켜, 더 많은 사람들이 깨어날 수 있겠지.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14550#home>

다시 ‘인과적 사고‘와 ‘응보적 사고‘라는 표현으로 돌아와서,

저 위의 한국인의 협상 방식 증언에서 나타나듯이, 한국인들은 ‘논리적 사고’가 아니라 ‘남의 생각을 읽으려는 사고’를 한다.

비대칭적인 정보를 알고 있으면 그걸 ‘권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정보를 숨기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역시 반대편에서는 정보를 훔칠 수 있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

(이 블로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놓은걸 ‘숨길 건 숨겨야지’라고 조언을 받은 적도 있다. 악마 댓글러들이 그걸 왜곡해서 날 공격하는데 이용하고, 그러면 자기네들이 이긴거라고 생각한단다. 고급 지식에 기반한 지적 대화로 상대방이 틀린 걸 밝히는게 이긴게 아니라.)

 

국회 청문회에서 ‘검증’이라고 하는 행동이 ‘내가 뭘 뒤져서 너의 숨겨진 과거를 찾아냈다’ 같은 이야기 위주다.

저 사람이 XYZ라는 부서를 이끄는 장관이 되면 어떤 정책을 펼칠 것 같은데, 그 때 무슨 문제가 있을지를 묻는 청문회는 여태까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단 한 차례도.

정치인들이 위의 문장을 보면, 세상 살 줄 모르는 헛똑똑이 바보라고 비웃을 것이다.

그저 협잡으로 누군가가 동성애자, 마약중독자라고 거짓말 소문을 퍼뜨려서 공천을 못 받게 만드는게 그 동네의 생리니까.

장관 업무를 잘 하는지는 그 사람의 ‘전문성’ 수준으로 결정될텐데, 정작 ‘검증’ 대상은 ‘전문성’이 아니라, ‘털어서 나는 먼지’다.

세상에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 결국 ‘전문성’ 대신 ‘뻔뻔함’을 갖춘 사람이 장관직을 수행하게 된다.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SNS계정 같은데 몰려가서 폭격질해대고, 신상털이나 하면 그 사람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단순히 수십만 명이 어디에 청원을 넣기만 하면 대답을 해 줘야 한다는 시스템을 국가 권력의 최상위층이 만들어내는 것도,

‘인과적 사고’에 기반한 전문가의 판단과 논리의 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찌라시’급의 ‘정보’로 만든 ‘선동’이 중심이 되는 나라이기 때문인 것이다.

 

 

Data Science 영역에서, 제대로 된 교육은 ‘인과적 사고’에 기반해 Data를 논리 검증의 도구로 쓸 수 있는 ‘생각의 Frame’을 만들어줘야 한다.

어차피 도구는 어디가서 배우건 별 다르지 않다. 한국처럼 도구조차도 못 가르치면서 Data Science 교수하는 사람들이 은근 많은 경우는 예외겠지만.

한국이 ‘인과적 사고’가 아니라,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그래프 하나에 ‘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결국 지식이 아예 없는게 일반적인 수준이라 그저 지식만 좀 알아도 ‘핵 쩌는’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인과적 사고’는 언감생심이다. 답안지 외우기 바쁜 수준이구만, 무슨 A와 B의 상관관계 같은 이야기하고 있나.

 

근데, ‘도구’는 많은 경우 별로 대단치 않다. 난 정말 내 기준으로 학부 2-3학년 수준의 ‘도구’만 가르친다. 많이 배울 필요도 없다.

아마 우리 SIAI학생들도 ‘도구’ 자체는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도구’를 엮어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생각의 Frame’이다.

Critical thinking, logical thinking (CTLT)으로 다시 돌아온다.

Github에서 남의 코드만 복붙해와도 Data Science 공부하는건데, ‘직관’을 배워야한다는 헛소리하는 곳이라고 우리 SIAI 욕하던 어느 블로거가 문득 생각나네.

 

위의 2번은 우리 시험 예시인데, 더 위의 6번 문제는 평소 수업 시간에 풀어준 문제다.

자세히 읽어보면 같은 문제인데 껍데기만 바꿔놨다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저렇게 수업 시간에 ‘생각의 Frame’을 배우고 (6번 및 유사문제 반복), 그걸 체화시켰는지 점검하는 시험 문제(2번)를 낸다.

 

처음 배울 때는 수업 중에 왠 논문 하나를 정리한 문제가 나오니 충격을 먹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들로 정리된 논문 하나의 ‘생각의 Frame’을 비슷한 문제들을 반복적으로 풀어보면서

(거의) 완전히 똑같은 수학을 쓰는데, 상황이 바뀌다보니 ‘똑같이 적용해도 되나?’는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바꿔 쓰면 제대로 하는 걸까는 생각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텐데, 그게 바로 ‘생각의 Frame’을 자기 것으로 내재화하는 훈련이다.

좋은 논문 하나 급의 ‘생각의 Frame’을 힘겹게 배우는데서 끝나는게 아니라, 그걸 자기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거든.

이렇게 훈련하다보면, 매우 뛰어난 사람의 ‘인과적 사고’가 어느 순간 내 것이 되어 있더라.

 

이게 내가 ‘양놈’들의 ‘인과적 사고’를 나이 30이 다 되어서 늦게나마 배웠던 방식이다.

수능 수학 빨리 풀고 잘 수 있다고 자뻑에 빠졌던 시절에 이걸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 우리 SIAI 학생들이 열심히 따라오는 걸 보면서 느끼지만,

교육 2달, 4달이 지나면서 시험 답안지를 보면, 최소한 ‘생존자’들은 확확 바뀌는게 눈에 보인다.

그들은 졸업할 때 쯤이 되면 한국 교육의 굴레를 많이 집어던질 수 있을 것이다.

MBA AI/BigData 학생들은 CTLT에 수학 도구까지 활용하고, 이번에 신설하는 Global MBA는 최소한 CTLT는 배워가겠지.

 

말을 바꾸면, 우리나라가 교육을 지금처럼 하지 않고, ‘제대로’ 하고 있으면, 한국 수준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올라갈 것이라는 희망은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Network에서 Factor 구현 방식만 설명해줘도 저 위의 짤에 있는 기사를 외교학 전공자가 뽑아낼 수 있던데,

분명 누군가는 더 깊게 공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인재들이 있는 나라일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초중고 교육이 그저 쉽게쉽게, 편하게편하게 위주로 돌아가고, 대학은 학생 숫자로 돈 벌이에 급급한 방식이면,

그런 잠재력 갖춘 인재들도 영원히 기회를 얻질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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