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 인증 후기 – 3.글로벌 Accreditation 시장
아래는 귀국 후 20일만에 eduQua 인증 심사 합격 통보를 받고 난 다음에 쓴 글이다.
심사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다.
국내에서 대학 설립해볼까 싶어서 처음 사립학교법 조항들 뒤적이던 때부터,
대학 인수하겠다고 전국의 “폐교 위기”에 직면한 학교의 (숨겨진) “주인”들 만나던 시점도 생각나고,
스위스 학교들이랑 협상하던 일, 그리고 변호사랑 계약서 놓고 투덜대던 일들 같은게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만세부르고 뛰어다닐 줄 알았는데, 별로 감흥이 없다. 이제 Entry고, 이게 시작인 걸 무의식 중에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굳이 따지자면, 눈 앞에 있는 더 큰 고민 때문에 괴롭고, 스트레스가 곱절로 더 쌓인다.
미국의 Accreditation 시장
보통 미국에서 대학을 만들면, 특히 MBA로 돈벌이를 할려고 하는 대학들은,
졸업생이 나와야 Accreditation 신청이라도 해 볼 수 있으니까,
보통은 알고 있는 지인들을 거의 유령 학생처럼 등록해서 최소 요구조건을 채운다.
물론, 설립 시점에 각 주별로 Ministry of Education 같은 부서에서 대학 교육 한다고 도장(?)을 받아야 한다.
저 아래에 어느 학교 이야기에서 잠깐 나오겠지만, 그 도장(?)부터 안 찍어주는 학교들도 많다.
그렇게 반쯤 유령 학생들 석사 교육 2년으로 최소 2차례 입학생, 1차례 졸업생이라는 요구조건을 충족시킨다음,
지역 인증 (Regional accreditation) 심사 기간 2년을 더 보내서 대략 4-5년을 거쳐 겨우겨우 대학을 운영할 수 있는 “인증”을 받게 된다.
석사 아니라 학부만 운영했으면 심사 자격 갖추는데만 아마 5년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각종 요건을 갖춰야하기 때문에 온갖 괴롭힘을 다 겪고, 중간에 포기하는 학교들도 은근히 많다.
미국에서는 Regional accreditation 심사 취소되면 대안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학교들이 등록금도 잘 안 받는다.
받더라도 우리가 인증 못 받을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군소리하지 마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미국 Regional accreditation을 받은 대학은 은행들이 학자금 대출을 해 주기 때문에,
교육으로 돈 벌이를 하려는 학교들에게는 필수 인증이라 학교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대신 인증서를 받는 순간부터 가격이 엄청나게 뛰어서 보통 4만불/년 x 4년짜리 학부를 운영하기 시작한다.
요즘은 1년 7만불짜리도 흔히 본다.
그 다음은, MBA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해서 AACSB라는 상위 Tier 인증을 도전한다.
위의 Regional도 그렇지만, AACSB도 또 졸업생이 있어야하고, 신입생을 2번이상 받았어야하고, 교수진들이 논문이 많아야하고 등등의 조건이 있는데,
여기도 알고 있는 지인들을 유령 학생처럼 등록해서 최소 요구조건을 채운다. 근데 이건 약과다.
요건 충족하는 교수진 채용이 훨씬 더 난이도가 높다. 쓰레기 논문이라도 돈 주고 SCI 저널 등재기록 만들고 이런 더러운 짓 많이하더라.
또다시 3-4년이 지나간다. (국내 모 국립대학 신생 경영학과가 6년만에 AACSB 인증 받은게 국내 최단기록으로 알고 있다.)
AACSB인증을 받은 학교의 MBA는 또 은행들이 학자금 대출을 해주고, 기업들이 자기네 직원에게 학비 지원을 해준다.
이래저래 운이 나쁘면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쓰고나면, Regional accreditation과 AACSB를 갖춘 대학이 되는데,
그렇게 고생하면서 돈과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으니 당연히 그 분들도 투자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하지 않겠는가?
이제 학교 랭킹 끌어올리는 광고비를 쏟아부으며 학비도 MBA학위 하나에 15만불, 20만불을 막 부른다.
E-MBA는 50만불, 100만불 부르는건 놀랄 일도 아니다.
여전히 Student loan은 인생의 굴레라는 비판이 많지만, 그래도 학위 유무가 자기 인생을 바꾸니까 학생들은 꾸역꾸역 찾아온다.
학비 비싸다고 징징대는거 알지만, 미국도 대부분의 대학교는 Non-profit 기관이어서 남는 돈이 별로 없는데도,
심지어 정부 지원금을 엄청나게 받는데도, 정작 교수들은 연봉이 모자라서 반강제로 2nd job을 뛰는 걸 봐라.
또 다른 예시로, 박사시절 내 지도교수가 연구 주제로 미팅하다 농담 따먹기로 넘어가면 종종 연봉 200만불 + 어마어마한 보너스 패키지 같은 헤지펀드들 오퍼 메일 보여줬었는데,
실제론 그 정도 레벨의 연봉을 학교에서 줄 수 있을만큼 엄청난 학비를 받아야 2nd job 안 하고 싶은 적절한 시장 가격이겠지?
이렇게보면 Higher education 시장에서 수요-공급이 제대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곳은 EMBA 처럼
학비는 엄청 비싸지만 교수들은 시간 때우며 가르치는거 없는 잉여 학위 같은 곳 밖에 없는 듯.
나머진 교수라는 사람들이 솔까말 자원봉사다. 그나마 사회적 지위, 명성, 안정성 같은게 따라오니까 다들 하고 싶어하는거겠지. 아님 봉사하기 귀찮으니까 엉망으로 가르치고.
학교 설립부터 뛰어난 교수 인재까지 다 모으는 엄청난 노력을 다 쏟아붓는데 몇 십년의 세월과 그렇게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데,
지난 글에도 썼지만, 미국에서 학위 인증 받으려고 몇 년간 고생하다 사기로 고소당한 분은, 위의 사정을 감안하면 억울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인증 절차 진행 중에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요구조건들이 정말 많은데, 그걸 다 해주는 와중에 몇 년씩 학교 운영하는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걸 벌써부터 느끼는 판국이니까.
학위주는 기관 만들려고 죽어라 고생해봐야 학비 비싸다고 투덜거리기나 하고, 근데 제대로 가르치면 나가떨어지고, 쉬운거 가르치면 학교 무시하고…
이러니까 어지간하면 대학교 만들면 안 되는거다.
다른 학위 인증 (Accreditation)들
지역 인가 이외에도 미국에서는 온라인 대학들 전용 인가인 DEAC (Distance Education Accrediting Commission)이라는 곳도 있고,
최근 살펴보니 University of the People이라고 하는 신흥 사립 온라인 대학이 2014년에 DEAC에서 인증을 받았더라.
2009년 설립된 학교인데 5년 동안 오랜 고생을 겪었던 것 같고, 최근까지도 캘리포니아 주의 대학교육기관 지정 (즉 “도장”)을 위해
여러 고충을 겪었던 이야길 봤다.
우리가 타겟하는 인증 중 하나다. 최근 미국 외의 해외 교육기관에 대한 인증도 시작했거든.
인증받고나면 미국으로 이사갈까?ㅋ 근데 주 별로 해 주는 대학 교육 기관 “도장” 받으려면 또 준비를 한참 해야겠지…
미국 학교들은, 특히 MBA로 돈 벌려는 학교들은 위에서 말한대로 각 지역별 Regional accreditation + AACSB로 끝내는데,
그 외 국가들의 학교들은 AACSB에 나머지 2개 (AMBA, EQUIS)를 붙여 Triple Crown이라고 불리는걸 만들어 내려고 노력들을 한다.
유럽에는 Triple Crown학교들이 많다. 스위스의 IMD부터 영국의 ICL을 비롯해서 유럽 대학들이 대체로 Triple Crown에 엄청 신경을 쓴다.
(국내에야 잘 안 알려져 있겠지만, 스위스의 IMD나 영국의 ICL은 국제적인 평판만 보면 SNU 같은 학교들 압살하는 수준이다.)
이 중 학교 레벨 인증 (Institutional Accreditation)이 아니라 프로그램 레벨 인증 (Program Accreditation)을 하는 EQUIS의 EFMB가
우리의 다음 타겟 중 한 곳이다. 유럽 특화된 인증이기도 하고.
그 외에도, Law school, Pedagogical school 등등의 다양한 실용학문들은 제각각 학위 인증 시스템들이 나라별로 다양하게 있더라.
해외에 학교 설립하며 졸지에 글로벌 학위 인증 시장을 공부하게 됐는데,
각 기관별 요구 조건을 알고나니 왜 내가 다닌 학교들이 그렇게 운영되었는지도 알게 됐고,
학교라는 조직들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면서 저런 기관들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며 영업을 하는지도 좀 더 자세히 알게 됐다.
내 프로그램 호스팅 계약 파기하던 무렵 그 학교의 Dean이 날더러
“You may have little more knowledge in Data Science, but you know nothing about running a university.”
라고 그랬었는데, 20년 넘게 학교 운영하던 그 분들을 내가 무슨 재주로 단박에 따라잡을 수 있을까?
실제로도, Accreditation 과정 중 요구사항으로 교육 퀄리티는 둘째문제고, 학교 운영을 해 보니 그 뒤에 더 큰 문제가 있더라.
Program accreditation 심사 때는 묻지 않지만, Institutional accreditation 심사를 할 때는,
그런 온갖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정말 괴로울만큼 꼬치꼬치 캐 묻는다.
교육 퀄리티만큼이나 학교라는 조직을 경영할 능력이 있는지, 시장 수요를 대응할 능력이 있는지 검증하는거겠지.
Higher education 운영 고민?
참고로 심사 중에, 교육 관련해서 온갖 문제가 있었을텐데, 어떻게 처리했냐, 증거인 회의 의사록 들이대라 같은 요건들도 있다.
거기다, 교수 총회, 학생 총회 열었냐, 학생들한테 의견 수렴해서 다음해부터 운영방침 바꾼 기록 있냐, 이사진 모임 등등등등
학교 운영에 대한 자료만 몇 백 페이지는 보내준 것 같다ㅋ 학생들한테 겨우 이 돈 받으면서 이렇게까지 시달려야되나 싶더라ㅠ
시달리던 끝에 내린 결론은, 한국인만 계속 받을거라면 더 이상 학위 인증에 신경 더 쓰지 말고, 지금 이대로 그냥 놔두는게 답인 것 같다.
내 기준으론 국내 모든 대학이 다 sub standard 교육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 학교 아니면 최소 1-2억 쓸 각오하고 유학 나가야 되는데,
그런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 숫자도 몇 명 없는 것 같고, 대부분은 그냥 Fancy해 보이는 학위만 따서 거들먹거리고 싶은 겉멋사냥꾼들이고,
겉멋사냥꾼 수준은 아니더라도 자기 수준 잘 모르고 까불거릴 줄만 아는, 내 교육을 흡수할 수 있는 학생 숫자가 거의 없는 시장이라는 걸,
미루어 짐작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실에 부딪혀가며 완벽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짐작으로야 오래전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왜 학부 시절 교수님들이 박사 가겠다고 추천서 써 달라고 그러면 “어려운” 과목들 학점보고 까탈스럽게 구셨는지 너무 이해가 된다.
Research school 레벨의 교육을 따라갈 수 있는 검증이 안 되었는데, 살아남는 사람 거의 없는 교육인데, 괜히 뻘짓하지말고 직장 다니며 조용히 살아라는 거겠지.
똑같은 맥락에서, 어차피 내 방식으로 핵심 Theory를 이해해야 현실 적용이 가능한 교육을 따라올 수 있는 인재는 거의 없는 나라인데,
그 몇 명 때문에 매년 마이너스를 찍어가며 착하게 퍼주기만 하고 살기에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사업가고, 생활인이고, 인간이다.
그렇다고 난 허접 MBA같은 Fancy 학위 팔아먹는 학위장사꾼은 아니거든. 팔아먹어야 운영할 수 있음 차라리 접어야지 뭐.
그게 아니면, 위의 미국 신생 대학 예시처럼, 이번에 설립한 스위스의 사립 대학을 유럽, 미주 시장으로 키우는 도전을 하는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고생은 우습게 보일 시간, 노력,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겠지.
그런데 이건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닌데… 학교 운영은 커녕 교육만 빼놓고봐도 나는 오래 전에 내려놨던 일인데…
가장 한국인을 위한 길이 어째 한국인들한테는 안 되니까 외국 시장에 진출하려고 내 인생을 갈아넣어야 된다는 황당한 해결책 밖에 없다니…
최소한 멍청한 정부가 제대로 예산만 배정했더라도, 공돌이들이 세금 파티만 안 했더라도, 지난 5년간 DS전공 제대로 키워놨으면 지금보단 나았을텐데 에효…
그래, 명품 매장은 구매력 있는 부자나라에나 생기는거였지.
Higher education과 사업간 시너지
이번 출장 중에 우리 회사 담당인 스위스 은행 세일즈와 처음으로 Face-to-face 미팅을 하는데, 미팅룸 밖에서 우리를 힐끗힐끗 보는 사람이 너무 많길래,
혹시 내가 뭐 문제 일으켰냐고 물어봤더니, 처음 계좌 개설할 때 이런 교육을 혼자서 다 한다는 서류를 들이미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이거 거짓말인 것 같다로 자기네들끼리 말이 많았었다며,
오늘 이렇게 실물을 보게된다고 내가 스위스 방문 일정 잡던 때부터 다들 엄청 기대(?)하고 있었단다ㅋ
Respect라는 단어를 5번쯤 들은거 같은데, 입발린 칭찬이라도 유럽 백인한테 이정도까지 칭찬을 듣나ㅋㅋ 오래 살고 볼 일이다ㅋㅋ
우리 SIAI가 스위스 시장에 정상적인 학교 구조를 갖추고 교육을 공급하면 이 교육을 받으러 올 사람이 엄청 많을 것 같다고 입에 발린 칭찬(?)을 하더라.
세일즈가 고객에게 흔히 하는 칭찬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한국 같은 2류 인재들 시장에서는 확장성에 한계가 명확한 교육일지 몰라도,
이런 선진 시장에서는 학교만 좀 더 체계를 갖추면 진짜 시장 진입이 가능하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의 착각인가?ㅋ)
대신 그게 엄청 고난의 길이니까 문제인거지.
내가 찾은 타협점은, 키우려는 우리 회사 조직의 기능 중, 대학교처럼 한국에서는 빡빡한 규정상 무리, 아니 불가능하지만,
스위스라는 자유주의 기업가 천국에서는 가능한 사업라인들을 붙여서 대학 교육과 같이 키우면서 Win-win 할 수 있는 구조가 나오면,
해외 운영을 계속하면서 한국인 학생들 중 극소수의 능력자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형태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는 안이다.
온라인 대학이라 학교 주소를 이전하는 것도 부담이 없으니까, 스위스 여러 주를 옮겨다니거나, 아예 다른 나라로 본사 이전해도 큰 상관이 없기도 하고,
우리에게 빡빡한 제한을 하지 않는 (지방)정부를 골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글로벌 Accreditation 시장에서 하나씩 하나씩 인가 모으는거, 분명히 엄청 힘들기는 하겠지만,
사업 키우는데 학교 써먹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단 말이지. 흠.
이런 고민을 하는걸 보면 확실히 나는 쉽게 돈 버는 사업 못 고르는 바보 사업가지 교육에 정체성을 둔 교육자는 아닌 것 같다.
학위 인증 후기 – 2.(좀 이상하지만) 괜찮은데 스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