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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AI 경영권을 유럽 애들한테 넘겨주면서 받은 요청들이 몇 가지 있는데
- 한국에서 그간 고급 AI교육으로 마케팅 한 게 있으니 한번 더 인재들을 모아보면 어떨까
- SIAI 이름으로는 교육하기 힘들어도 좀 널럴한 Python 강의들 만들어서 수익 모델로 쓰면 어떨까
는 포인트들이 있다.
첫번째는 요청 받은대로 진행을 했고, 이제 두번째가 고민인데, 그간 날 봤던 분들이면 알겠지만, 내가 저걸 하고 있으면 영혼을 파는 기분이 들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돈 못 버는 교육 사업을 끌고 오느라 유럽에서 고생하는데 제대로 뭘 챙겨주지도 못 한 탓에 그 친구들한테 마음의 빚도 크고, SIAI 관련 교통 정리하면서 서로 주고 받느라 복잡하게 얽힌 내용들이 많으니 어지간하면 요청 사항을 다 들어주고 싶은데, 남들은 쉽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저거 하기가 너무 힘들다.
아마 유럽 동료들도 미국 대학들 운영 전략을 참고해서 저걸 갖고 왔을텐데 싶어서, 이것도 챗GPT한테 한번 물어봤다.

일반인 대상 AI 교육 vs. 전문 인력 양성 교육
역시 예상대로 미국 대학들이 2개의 완전히 다른 트랙을 운영하고 있는 걸 설명해주더라.
아마 외부에서 SIAI 교육을 보고 MBA AI/BigData는 죽어도 안 들어가고, MSc AI/Data Science 아니면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위의 챗GPT 답변과 비슷한 생각들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설립 당시에 내 머리 속에도 큰 틀에서는 비슷한 그림이 있었는데, 내 입장에서 충격인 건, 학부 2학년 수준의 강의를 MBA AI에 넣어놨는데도 한국에서 제대로 졸업하는 애들이 거의 없었다고 변명(?)을 좀 해 보자.
외부에서 오해했던 것에 맞춰서, 더 수준을 낮춰서 진짜 Python으로 코드 몇 줄 돌리는 수준의 3류 강의를 MBA에 배정했었어야 아마 그간 봐왔던 '대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도대체 그건 배워봐야 어디에 쓰는거지 싶어서, 도저히 양심의 가책을 이길 수가 없어서 아예 그런 커리큘럼을 만들질 않았는데, 다들 저러고 있더란 말이지.
그걸 배운 애들은 자기네가 공부한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내가 팩트 폭격을 하니, 열 받았는지 나한테 온갖 비난을 다 했는데, 참 내가 바보였다 싶었다. 그냥 비위나 맞춰주고 나도 돈이나 벌 껄.
아니 최소한 미국 대학들처럼 꼼수 과정을 널럴하게 만들어서 운영이나 할 껄.

좀 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교육 과정을 만들어 봐
지난 2023년에 입학했다가 반 년만에 게임 개발 하고 싶어서 안 되겠다며 도망간 K대 컴퓨터과 출신 여학생이 하나 있는데, 그 학생이 국내의 어느 'AI교육 취업 연계 과정'을 갔다가, 자기도 사기를 당했고, 취업을 시켜준 기업도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그런 적이 있다.
그 전까지는 내가 그건 사기다라고 지적하는 걸 보고 '저 사람이야 말로 사기꾼이다'는 커뮤니티 댓글에 공감을 했었다가, 기업에서 하나도 쓸 수 없는 지식을 배웠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왜 내가 그런 목소리를 냈는지 알게 됐다고 했었다.
아마 밖에서 날 바라보는 사람들이 저 학생과 비슷한 사고의 흐름을 겪을 것이다. 끝까지 그런 커뮤니티 관점으로 날 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처음부터 AI 부트캠프들의 황당한 교육을 보고 내 생각에 동조했지만 말을 꺼내봐야 나처럼 욕만 먹을 것 같으니까 조용히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많은 분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겠지.
유럽 친구들이 내게 원하는건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영어권 잠재 소비자'를 설득해보자는 거다.
교육이라는 게 경험재고, 우리 교육을 받기 전까진 우리가 얼마나 알짜 교육을 하는지 알기가 힘든 만큼, Words of mouth를 넘어서 Entry barrier를 살짝 넘는 맛보기 강의를 열어주자는 건데, 한국에서 지난 2018년부터 2021년 3월까지 대략 만 3년 남짓 했던 1달 짜리 단기 강의가 제일 먼저 생각났지만, 솔직히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다.
그 때 내가 받았던 학생들 중엔 SIAI 입학해서 우수한 논문을 쓰고 졸업한 초A급 인재도 있긴 했지만, 그 때도 느꼈고, 돌이켜봐도 그런 분들은 원래부터 재능이 넘치는 인재들이었다.
그나마 뭐라도 해 봤다며 나한테 재무제표 데이터에 PCA를 쳐서 자본과 부채가 90도로 분리된 벡터가 나오는, 매우 당연한 상황을 놓고 내가 강조하던 'PCA 결과 해석'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며 황당한 메일을 보낸 분, 왜 난데없이 PCA를 거기다 했냐고 되물으니 그럼 tSNE를 써야 되냐며, PCA라는 계산의 진짜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티를 팍팍 내는 분 정도만 되어도 그래도 그나마 실패 그룹 중에서도 나은 축이었기 때문이다.
챗GPT가 해 준 말은, 교육 실패 따위를 생각하면 안 된다는거지?

They sell AI degrees to fools
이걸 역시 챗GPT한테 한번 물어봤다. 위의 스크린 샷에 담은 답변 내용을 보면
They sell AI degrees to 'fools'
라는 표현이 하단 어딘가에 보일 것이다. 챗GPT가 'fools'라는 공격적인 단어를 안 쓰도록 셋팅을 해 놨던 것 같은데, 저렇게 강한 단어가 나오니 잠깐 당황했었다.
더 놀라운 건 마지막 문장이다
Now you see why they don’t fight the AI hype—they are some of its biggest beneficiaries.
말을 바꾸면, AI 부트캠프가 사기 교육이나 다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내가 매우 어리석었다는 뜻이다.
미국 대학들처럼 양면 전략을 써서 돈은 돈 대로 벌고, 다른 한 쪽에서는 학교 명성을 챙기는 이중 전략을 썼어야 하는데, 난 너무 순진했다.

Double game without losing my reputation
그래서 내가 너무 순진했다(Read 멍청했다)며, 어떻게 하는게 좋겠냐고 물어보니,
그간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Yes, the Name You Hate) '시민 데이터 과학자(Citizen Data Scientist)'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초 교육을 돌려란다.
교육 내용으로 추천 받은 건
- basic machine learning with Python, dashboards, and automation
- just enough for entry-level work
같은, 그간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멀리하던 내용이다.
유럽 친구들이랑 챗GPT 기업 계정을 같이 공유하니까 이걸 보라고 전달해줬는데, 애들한테
Even ChatGPT knows more marketing strategies than you do
라는 놀림을 들었다.

Use hype to your advantage instead of fighting it head-on
'가짜 AI 교육'이라고 싸우지 말고, 그냥 미국 대학들처럼 2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1개만 영혼의 순결성을 위해서 유지하고, 나머지 1개는 기업의 목적을 위해서 움직여라는데, 아 모르겠다.
지난 1년간 어지간한 부탁은 다 들어줬는데, 이건 양심상 도저히 못하겠더라.
그냥 딴 걸 더 할꺼니까 'Citizen Data Scientist' 과정 만큼은 너네가 직접 만들라고 거절했다.
예전에 어느 의대생이 아래의 메세지를 담은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 가짜들을 싫어하는 마음에 너무 공감이 된다
- 예전에 1달 짜리 강의할 때 들었어야 됐다
- 의대 공부하면서 데이터 과학 학위 할려니 시간이 안 난다
그 분한테 위의 챗GPT와의 대화를 바치고 싶다.
학위 할려니 시간이 안 나더라도 당시 1달 짜리 강의 같은, 그나마 그 강의는 모델 뒤에 있는 수학적 직관의 중요성을 수십 차례 강조하기라도 했었지, 더 심하게 조잡한 다른 강의들을 들으면 당신도 챗GPT가 말하는 그 'Fool'이 될 것이다.
난 그런 기초 부트캠프를 안 돌려서 'Fool'이지만, 내가 'Fool'이 되는 대신에 당신이 더 큰 'Fool'이 되는 걸 막고 싶다.
라고 전해주고 싶다고 이야길 했더니 유럽 애들한테
Then let's make them less fool
이라는 답변을 들었다ㅋㅋ
.... 그냥 첨부터 SIAI 안 만들었으면 어디 빚질 일도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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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sponse
돈 벌고 싶으면 돈 받을 자격이 있는 콘텐츠로 돈 벌자고 설득했습니다.
저희 SIAI 학위 과정이야 비교군이 글로벌 최상위권 대학들 밖에 없는 고급 교육이니 돈 받는게 미안하지 않은데, 비 학위 과정 단순 소개 강의에 돈 받으면 양심의 가책을 피하기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희가 글로벌 탑 스쿨을 지향하는 대학이 된 지도 이제 4년째인데, 그 사이 시장도 많이 성숙했고, 그렇다고 취직 특화 강의도 아니고…
그간 저희가 무시했던 수준의 학원 교육에 돈 받을 체급도 아니게 됐고, 그런 강의 내용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하던 한 달 강의를 어떻게 좀 재조정해서, GIAI LMS(https://lms.giai.org)에 다시 제작해서 올리고, Free로 푸는 걸로 합의를 봤어요. 저희 GIAI 기준에는 부트캠프 수준 교육이지만, 당시에 맛보기로 넣었던대로 딥러닝이라는 모델이 회귀분석과 Factor Analysis와 Tree model과 Ensemble의 결합이라는 논리도 가르치고, 일반적인 부트캠프보다는 코드 따라하기 예제를 줄이고 직관적인 이해를 추가하는데 초점을 맞춰놨습니다.
3월 중에 웹사이트 개편 작업 끝나는대로 올려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