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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잘 치는 것이 개발 잘 하는 것 아냐, 문제를 잘 푸는 능력 갖춰야 'Street smart' 역량을 갖춘 개발자를 뽑아야 효율적인 개발 가능 개발 채용시에 'Street smart'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문제 풀이 역량 점검 필수
수능 수학 시험 문제들을 보면, 때로는 수학 시험 문제가 아니라 IQ 테스트 문제처럼 보이는 경우들도 있다. 물론 고교 과정의 수학을 활용하면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겠지만,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굳이 수학적인 논리를 쌓지 않더라도 상식을 응용하는 수준에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고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암기형 학원 출신들은 이런 문제들을 매우 어려워했던 반면, 평소에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하던 친구들이 왜 이렇게 쉬운 문제가 나왔냐는 표정으로 문제를 풀어냈던 기억이 있다. 어른들은 이걸 '공부 머리'가 아니라 '사업 머리', 혹은 '센스'로 바꿔서 부르기도 하고, 영어권 용어로는 'Book smart'와 'Street smart'라는 표현도 있다.
수학적으로 도전적인 연구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회사 업무는 'Street smart'를 잘 갖추고 있는 분들이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텐데, 개발자 사회도 완전히 똑같은 논리로 흘러가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Street smart' 성향을 갖춘 개발자를 뽑아서 일을 주고 싶지, 'Book smart'인 개발자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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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를 잘 치는 사람과 문제를 잘 푸는 사람
가끔 영화, 드라마 같은 곳에서 IT전문가라고 하면서 해킹으로 모든 시스템을 다 뚫고 다니는 등장인물들의 전문성을 보여주기 위해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쉴새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키보드가 기계음을 내는 것을 이용해서 코드를 치고 있는 소리를 들려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전에 지원 서류를 내던 중에 가장 길게 쳐 본 코드가 몇 줄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는데, 엄청나게 긴 코드를 쳐 봤으면 코딩 전문가인가?
나는 100줄 짜리 코드를 쳐야 겨우 해결했던 문제를 10줄 코드로 해결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야 할까? 나는 시끄러운 키보드 소리를 내면서 100줄 짜리 코드를 1시간 동안 쳤는데, 옆 자리에 앉은 분은 10분 동안 10줄 코드를 쳤으면 나보다 효율이 나쁜건가? 내가 친 코드는 계산이 돌아가는데 10시간이 걸리는데, 10줄 짜리 그 코드는 10초만에 계산 결과를 보여준다면?
주어진 문제가 뭔지,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하는지를 알고, 코드 작업에서 추상화, 효율화 등등을 잘 할 수 있는 인력과 코드를 단순히 '잘 치는' 것은 그렇게 큰 상관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위의 극단적인 100줄, 10줄 코드 사례처럼, 되려 코드를 길게 치는 것이 어리석은 선택인 경우도 많다.
사실 뛰어난 개발자는 주어진 문제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다음에 또 하더라도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추상화를 잘 해서 풀어내는 사람이지, 잘 모르는 사람들 눈에 멋있게 보이도록 쉴새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이 아니다.
밤을 샌 직원과 한 줄 답변만 남기고 간 직원
모 유명 방송사에서 우리 회사에서 제작한 이미지의 저작권을 무시하고 갖다 쓴 적이 있다. 그 담당자를 찾으려고 전화를 10통도 넘게하고, 하루를 통으로 날려서 겨우 찾았는데, '출처가 어디인지 썼으니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변 메일을 보내주더라. 심지어 이게 그 유명 방송사의 사내 변호사한테 몇 시간을 기다려서 받은 답변이란다.
출처가 어디인지 쓰기만 하면 남의 물건을 다 훔칠 수 있다는 황당한 논리라서 이게 정말 대기업 급의 유명 방송사에서 고용한 변호사가 내놓은 답변이 맞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는데, 가까운 변호사 친구한테 뭐라고 대응해야겠냐며 질문을 했더니
그럼 너네도 출처만 밝힐테니 그 방송사에서 제작한 모든 이미지 다 써도 되는거냐고 물어봐봐
라고 한 줄 답변을 보내주더라.
우리 회사는 작으니까 하루에 이미지를 10개 남짓 만드는데, 그 유명 방송사는 하루에 최소한 이미지를 1,000개는 만들테니, 출처가 어디인지 쓰기만 하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그 억지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 회사가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학부시절부터 센스 넘치기로 유명했던 친구가 변호사가 됐는데, 정말 단 1줄로 그 유명 방송사의 어이없는 논리를 격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송사는 지금까지 그 1줄 논리에 격파당할 자신들의 황당한 답변에 대한 해명을 피하고 있는데, 유명 방송사랑 법정 다툼까지 해야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 1줄 답변으로 인지는 하셨을 것이다.
비단 고액 연봉을 받는 변호사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센스' 사례가 아니라, 개발의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사건이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 서버가 한동안 비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서 고민이 많았었는데, 퇴근 길에 문득 PHP 버전 바꾸면서 설정 값을 하나 안 바꿔줬던 생각이 났다. 다시 사무실에 돌아와서 그 값만 바꿔줬더니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단순한 경험 부족 탓 이전에 개발 센스 부족이 이런 사태를 낳은 것이 아닌가를 생각을 했었다.
이런 문제는 밤을 새서 일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바로 파악할 수 있는 도구가 있거나, 그런 감각적인 센스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모든 설정을 하나하나 다 비교해보면서 굉장히 많은 시간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 센스 넘치는 변호사 친구가 아니라, 다른 변호사를 찾아갔었으면 저작권 관련된 법과 판례를 열심히 뒤지고, 시간을 많이 썼다며 변호사 비용을 많이 청구할텐데, 의뢰인들이 계속 그런 변호사를 찾아갈까?
문제를 잘 푸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
개발자라고 불리는 직군도 다양한 종류의 업무가 있을 것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Book smart'인 분들이, 또 어떤 부분에서는 'Street smart'인 분들이 일을 잘 하는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저 변호사 친구도 형사 소송 관련해서는 지긋지긋해하는 반면, 위의 사례처럼 억지 논리에 대응해야 될 때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주변을 놀라게 하는 능력자였다.
안타깝게도 저런 변호사가 시장에 매우 드물다. 그간 국내에서 만나본 변호사들 대부분이 법 규정 몇 조 몇 항의 무슨 목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는 법전의 논리를 따라가는 훈련을 받은 티는 났지만, 억지 논리에는 억지 논리로 대응하는 식으로 상대방의 입을 쑥 들어가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는 거의 못 만나봤다.
그간 만나본 개발자들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카카오 로그인 연동 작업을 하는데 썼던 플러그인이 이메일 주소, 닉네임을 연동하겠냐고 추가 질문을 하는 페이지를 하나 더 만들어 놨던데, 그 페이지 디자인이 너무 이상해서 우리 회사 서비스 전체가 뭔가 개인정보 훔쳐가는 사기 웹페이지처럼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던 적이 있다. 당시 있던 개발자는 졸기만 하고, 나 몰래 설립했던 개인사업자 업무만 하다가 회사를 떠났는데, 같은 문제를 웹디자이너랑 이야길 하니까 그 페이지 디자인을 새로 다 해야겠다고 그러더라. 어디에 그 CSS/JS 정보를 넣어서 웹페이지 구성을 바꿔야하는지 묻고 더 이상 진척이 없던데, 내가 이 작업을 직접 하게됐던 날, 잠깐 고민해보다가 그냥 이메일 주소와 닉네임을 안 받아오도록 바꿔버리는 걸로 문제를 해결했다.
괜히 받아왔다가 해킹이라도 당하면 정보 유출로 막대한 손해 배상 소송을 맞을지도 모르는데, 우리 회사가 무슨 이메일 마케팅을 하면서 매주 이메일로 정보를 보내줄 것도 아니고, 닉네임은 자기들이 알아서 다시 만들 수 있도록 메뉴만 하나 더 추가해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메일 주소를 강제로 변경하는 코드 라인을 추가하는 것과 닉네임 변경해주는 메뉴를 추가해주는 걸로 목표가 바뀌고 나니, 이상한 중간 웹페이지를 띄워줄 일도 없어지고, 디자인을 해줘야 할 일도 없어졌다. 이런걸 그 일 못하고 졸기만 하던 개발자를 뽑기 전부터 다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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