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안뽑] ㊳개발자 없다고 불평말고, 개발자 필요없는 시스템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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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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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of GIAI Korea
Professor of AI/Data Science @ SI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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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 18:30

워드프레스 생태계 이용하면 대부분의 기능 구현 가능, 굳이 개발자 필요없는 경우 많아
개발자 없다고 불평말고, 개발자가 필요없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역량 갖춰야
실력 나쁜 목수가 연장 탓하는 것, 워드프레스 같은 기본 솔루션으로 충분히 고급 서비스 개발 가능해

요즘 워드프레스로 모든 웹페이지를 새로 만들면서, 워드프레스 생태계를 잘 활용하면 수 많은 웹서비스들을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올해 하반기까지 우리 회사에서 직접 필요한 부분들을 다 만들고 나면, 올해 말이나 내년 쯤에는 웹페이지 만들고 싶은 분들이 외주 업체들이나 개발자들에게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출시하면 어떻겠나는 생각도 한다. 그간 국내에서 내가 당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른 채 실력없는 개발자들에게 많은 비용을 쓰고 있는 경우들이 은근히 많을 것이다.

특히, 스타트업 하겠다는 어린 친구들이 개발자를 뽑아야 된다는 표현들에 현혹되어서 개발자 없으니 사업을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하다. 해보고 싶다고 설명하는 사업 모델들 대부분이 제대로 준비가 안 된, 매우 조잡한 상태라 크게 귀담아 듣지는 않지만, 기술적으로 엄청난 도전인 경우는 거의 없고, 워드프레스 같은 단순한 솔루션으로 웹페이지를 하나하나 만들면서 최초 1~2년 간의 실험을 거칠 수 있는 상황이니까, 굳이 개발자가 필요없다고 이야길 해 줘도 잘 이해를 못 하더라. '워드프레스 개발자'가 있어야 되는거 아니냐는 질문도 들었는데, 그간 내가 보여줬듯이, 개발자와 큰 관련이 없는 사람이 만들어도 얼마든지 괜찮은 웹서비스를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개발자 없이 돌아가는 IT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집에 형광등을 하나 갈아 끼우는 걸로 굳이 가전 기구 전문가를 불러야 할까? 동네 경비원 아저씨 한 분만 오셔도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는 일이고, 그 전에 대부분 본인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전등 하나를 교체하고 나면 어둡던 집이 밝아져서 생활 시간대를 크게 늘릴 수 있는데, 정작 필요한 도전이라고 그래봐야 맞는 사이즈의 전등을 사는 작업이지, 정작 교체하는 작업은 아니다.

대부분의 IT시스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발자가, 그것도 고급 개발자가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우리나라에 고급 개발자도 거의 없다. 국내에서 내가 봤던 9할 이상의 웹페이지 개발은 회사 소개하는 홈페이지 1장에서 쇼핑몰/언론사처럼 기본 설계가 이미 다 갖춰져 있는 경우들이었다. 그런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워드프레스를 비롯한 수 많은 '솔루션'들이 나와있는데, 왜 굳이 개발자를 뽑아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렇게 '솔루션'을 써서 만들어 놓은 웹페이지에 문제가 생기면 수정해달라고 해야할 때 개발자가 필요한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솔루션'의 기능 하나하나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담당자들도 많이 생겼다. 국내 고도몰, 카페24 등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워드프레스는 기능 하나 개선 작업에 대한 문의를 게시판에 올리면 적게는 5~6명, 많게는 20~30명의 전문가들이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요청 메일을 보낸다.

말을 바꾸면, 처음 설계부터 시스템 완성 이후 운영까지 거의 대부분을 외주로 맡길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지간하면 당신이 직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라

개발자들에게 시스템을 맡겨 놓으면, 그들이 문제 해결을 해 줄 때까지 막연히 기다려야 하는 경우들이 너무 많다. 운 좋게 빠릿빠릿한 개발자를 뽑아서 시간 손실없이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국내에서 그간 뽑아본 개발자들 상황을 봤을 때, 어디 믿고 맡길 수 인력 1명 뽑기 쉽지 않다. 난 한국에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문제에 접근하는데, 우리 회사 직원들 중에 이래저래 IT기업들 길게 다닌 사람들일수록 "대표님이 직접하시는 편이 훨씬 더 빠르다는 걸 이미 너무 많이 봤다"는 표현들을 쓴다. 다른 회사에서도 IT시스템에 일부 문제 생겼을 때 개발팀 사정이 내가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겪은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어떤 시스템이건 문제에 불만이 있는 당사자가 직접, 그것도 빠르게 고칠 수 있어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워드프레스가 그런 불만을 비개발자가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대표적인 플랫폼 중 하나로 자리잡은 상태이기 때문에 나 역시 워드프레스를 골랐는데, 덕분에 문제 하나 수정하는데 몇 주, 몇 달이나 걸리던 문제들이 대부분 하루, 이틀 안에 해결이 된다. 복잡한 코드 설계는 거의 없고, 기껏해야 시스템 셋팅을 바꾸려고 설정 파일을 수정하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동차들이 문제를 많이 안 일으키니까 아무 생각없이 타고 몰고 다니시겠지만, 만약에 자동차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문제를 일으킨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집집마다 자동차 수리 전문가를 고용해야할까? 아니면 차주가 약간의 자동차 관리 전문성을 갖추는 편이 나을까?

이미 영어권에서는 '자가수리(DIY, Do-It-Yourself)'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굳이 IT서비스도 개발자를 고용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수요에 맞춘 플랫폼들이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실력 나쁜 목수가 연장 탓을 한다

워드프레스가 가장 좋은 플랫폼 솔루션도 아니고, 잘 만들어 진 것도 아니다. 버그도 많고, 오류 투성이다. 최근에는 버전 6.4로 끌어올리면서 다양한 추가 기능을 냈었는데, 하루도 안 지나서 6.4.1로 버그 수정한 버전을 냈고, 다시 1주일만에 6.4.2 버전을 내면서 각종 문제를 해결했으니 업그레이드 해라며 계속 메세지가 뜨더라.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린 시스템인데, 그들이 시키는대로 따라서 다 만들었더니 이제 구글 페이지 스피드 기준으로 전 영역에서 100점을 받는 웹사이트가 됐다. 구독 회원제를 비롯해서 다양한 기능들이 추가되어서 많이 무거워진 상태인데, 예전 같았으면 꿈도 못 꾸는 것들을 다 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어지간히 무거운 기능을 더 붙이지 않는 이상 꾸준이 100점을 찍는 걸 보면서, 개발자들이 일을 못한다고 화를 낼 일이 아니라, 그냥 내가 직접 손을 댔으면 3달만에 전 영역 100점을 찍는 서비스를 만들었을텐데, 왜 그렇게 개발자 탓, 남 탓만 했었나 싶어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많은 개발자들이 워드프레스는 매우 조잡한 시스템이라면서 회사 서비스로 쓸 수 없다고 주장한다. Java, Javascript 등의 일반 개발 언어는 말할 것도 없고, 더 고급 언어에서는 쉽게 해결되는 각종 문제들의 원인을 찾기도 어려울만큼 시스템이 조잡하다는 지적을 하는 경우도 봤다.

많은 부분 사실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무슨 구글 경쟁사를 만들려는 것도 아니고, 난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회사가 쓸 수 있는 시스템, 필요한 기능을 담은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굳이 따지자면 주어진 기술적, 물리적, 금전적, 정신적 제약 조건 속에서 최적의 성능을 뽑아내면 된다. '파트타임'으로 하루 2~3시간만 써서 3달 만에 구글 페이지 스피드 기준으로 전 영역에서 100점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냈으면 충분한 것 아닌가? 서버 비용, 플러그인 비용을 다 포함해도 300만원을 안 들이고 10개 이상의 서비스를 뽑아냈다. 개발자 1명 월급이 얼마인지 생각해보면, 남는 장사도 이렇게 남는 장사가 없었다.

가까운 친구들과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벤처투자전문(VC) 기업을 만들면, 개발자 없이 워드프레스만으로 자기가 원하는 서비스를 만든 창업자들에게만 투자하는 방식으로 기준을 세우면 투자처 골라내기가 참 쉬울 것 같다는 농담이다. 물론 사업 모델을 꼼꼼히 살펴봐야겠지만, 개발은 잘 모르지만 자기 회사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는 의지, 학습 속도, 열정을 골고루 다 갖추고 있는 창업자를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기 때문에, VC 출신 그 친구들의 시선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다만, DIY는 해외로 나가면 일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한국인의 사고 굴레를 벗어난 인재에게만 투자하겠다는 표현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