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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안뽑] ㉖'개밥 테스트'와 사용자 경험(UX)과 실제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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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4 weeks
Real name
Keith Lee
Bio
Head of GIAI Korea
Professor of AI/Data Science @ SIAI
개발 완성품을 테스트해봐야 한다는 개발 업계 속어로 '개밥 테스트'라는 표현이 있음
그러나 테스트가 기능 확인에 그치는 경우 많아, 실제 사용자 경험과는 거리 멀어
사용자의 눈높이에서 개발을 해야 진짜 'Great Product' 만들 수 있는 것

개발자들 사이에 흔히 쓰이는 용어로 '개밥 테스트'라는 표현이 있다. 애완견한테 먹이를 주기 전에 주인이 직접 먹어보고 괜찮은 음식인지 확인을 해야 된다는 사고 방식을 빌려와서, 개발 상품을 고객에게 전달할 때 실제로 써 보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지적하는데 쓰이는 표현이다.

상식적으로 이런 '개밥 테스트'를 안 하는 개발자는 없을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개발을 완벽하게 하고, 사용자들을 예측해도 실제 사용자가 아닌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사이의 간격을 보통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전문가들이 메워넣으면서 디자인을 뜯어고치거나, 개발 결과물을 수정한다고 하는데,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실제 사용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사용자에 준하는 QA라는 사람들을 데려다놔도 완벽하진 않다. 사용자 숫자가 늘면 늘수록 온갖 당황스러운 사건들이 생기고, 결국에는 조금씩 '운영 개발'이라는 걸 하면서 서비스의 완성도를 점차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게 내가 아는 서비스 개발이다.

개발자-안-뽑음_202312
개발자-안-뽑음_202312

콘텐츠 생산자와 콘텐츠 소비자 사이의 간격

이제는 15년이 훌쩍 넘은 첫 직장 시절, 나는 하루에 많을 때는 100장도 넘는 PPT, Word 보고서를 올려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는 그 업무를 그렇게 싫어하질 않았는데, 아니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학부 3, 4학년을 싹 갈아넣고 외국계 증권사의 IBD를 가기위해 발악(?)을 했었는데, 문서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 오타 수정, 표현 수정을 하는 그 '라스트 마일'이 너무너무 싫었다.

밤을 새고 집을 못 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만큼 혹사(?)를 당했지만, 잠 안 자고 보고서에 들어간 콘텐츠를 뽑아내던 그 순간만큼은 꽤나 즐겁게 일을 했었다. 그러다 내 기준에 99%가 완성된 보고서를 올리고 부장님, 이사님이 "야 이X끼야, 넌 네가 써 놓고 안 읽냐? 읽지도 않고 나한테 갖다 준거냐?"는 꾸중을 들으면 즐거웠던 기분은 싹 날아가고 나 자신의 바보스러움 때문에 너무너무 괴롭더라.

그렇게 오타를 마구 찍어내고, 문장을 깔끔하게 다듬지 못하는 무능력은 지금도 해결이 안 됐고, 가끔 과거에 쓴 글을 보면 낯이 뜨거워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 쓸 때부터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을텐데, 최소한 써 놓고 난 다음에 이사님, 부장님의 당시 질책대로 한번이라도 꼼꼼하게 읽어봤으면 완성도가 높아졌을텐데, 난 왜 그걸 그렇게 못했었을까?

그런데, 개발자들이 만들어놓은 여러 서비스들을 보면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코드가 돌아간다는 이유로 이 부분을 더 살펴보지 않았을까, 왜 이걸 쓰는 사람들이 기능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부분을 놓쳤을까 싶은데, 그 시절 내가 그랬듯이 그냥 정신없이 기능을 찍어 냈을 것이고, 남들이 보는 관점으로 보정되는 것 없이 자기만의 시야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개발 결과물, UX 결과물, 그리고 진짜 사용자

개발자들도, 디자이너들도, 기획자들도 다들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 분들 중 매출액을 만들어 내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사용자의 눈높이'를 얼마나 잘 갖추고 서비스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개밥 테스트'를 하고 서비스 다 만들었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실제로 사용자가 되어서 혼자 이것저것 써 보는 것이다. 아무리 QA가 일을 잘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고, 결국은 생산자 본인이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난 파비리서치에 올라오는 우리 기자, 연구원들의 글을 밤에 자기 전에 꼭 읽는다. 혹시 오타가 있으면 지적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 쓰라고 시킨 내용들이 잘 전달됐는지도 확인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그 전에 내가 이런 내용들을 읽으면서 잠들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은 다른 언론사들, 연구소 보고서들을 검색해서 찾아보고, "역시 우리만큼 깊은 분석을 한 곳은 없군" 같은 자뻑에 빠지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보고서들에서 다룬 내용 중에 기사에 충분히 언급할 수 있는 포인트를 놓쳤으면 나 자신의 무능을 자책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Great Product'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해서 수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모든 걸 다 떠나서 내가 쓰고 싶으냐를 충족시키는 상품, 아니 나와 비슷한 수요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선택할만한 상품의 자격이 있는지를 사용자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그 상품의 완성도가 올라가고 'Great Product'가 될 후보 자격을 얻을 것이다.

워드프레스 개발자 뽑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음...글쎄요?

[개안뽑] 시리즈를 쓰면서 주변에서 "네가 워드프레스 개발자 뽑았어야 되는데 개발자를 잘못 뽑은거다"라는 지적을 받는데, 난 여전히 개발자의 사용 언어로 그렇게 개발자를 구분하는데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워드프레스 개발자라는 사람을 뽑아도 위에서 지적한 '사용자 경험'의 결함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피차 일반일 것 같다. 그간 한국에서 봤던 개발자 분들 중에 게임사에서 QA 작업을 수십번도 더 해보신 분들마저도 기능 개발 오류를 찾는 부분은 전문가여도 정작 사용자들이 어떻게 쓸지를 짐작하고 거기에 맞춰 기획적인 사고력을 갖춘 경우는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시 개발자를 뽑는다면, 아마 '워드프레스 개발자'를 뽑아야 될 것 같은데, PHP를 잘 알고, 백엔드, 프론트 엔드 개발 경험이 풍부하고, 워드프레스의 테마를 만들어 봤고, 서비스하는 플러그인을 만들어 본 경력이 있는 분들이 아니라, 워드프레스로 자기 회사 서비스들을 만들어보면서 불만이 있던 부분을 이래저래 뜯어고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찾을 것 같다. 한국식으로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를 분리해라면 3가지 기능을 적당히 해 본, 한국에서 어디 하나의 직군으로 취직하기 쉽지 않은 분들일 것 같은데, 그간 내 경험상 그런 분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내 업무를 대체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회사 내부에서는 100만원 남짓 들어간 서버 시스템으로 구글 페이지 스피드에서 전 영역 100점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낼 수 있는만큼, 이걸 Copy & Paste만 해주고 구글 기준 100점 받고 싶어하는 분들께 웹사이트 만들어주는 상품을 팔면 어떻겠냐는 말이 나온다. 웹사이트 제작 전문 에이전시들이 받는 금액의 절반만 받아도 충분히 수익성이 나올 수 있고, 구매자가 직접 이것저것 뜯어고치기 쉬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수익성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단다.

글쎄, 수익성이 엄청나게 좋을 것 같지도 않고, 실제로 이 정도 수준의 업무를 내가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담당자를 1명 뽑는다고 하면 어떤 사람을 뽑아야할까는 생각을 한번 해 봤다. 우리 회사 서비스에 손을 대는 것도 바빠서 여유가 안 되는 상황인데, 서비스가 되어버리면 정말 담당자가 따로 배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고객이 Copy & Paste된 페이지를 그대로 쓸 수는 없다. 최소한 로고라도 바꿔야 하고, 필요한 기능들이 다를 수도 있다. 그걸 다 맞춰줘야 되는데, 하나하나 들어주고, 거기에 맞춰 필요한 기능들을 설명해주고, 직접 해 볼만한 부분, 해 줘야 되는 부분들을 판단하고 답해줘야 한다. 한국에서 '개밥 테스트'해서 던져주면 자기 업무는 끝이라는 개발자가 이걸 할 수 있을까?

고객의 Needs를 잘 이해하고, 필요한 고민을 함께 해 줄 수 있어야 되는데, 그 모든 걸 1명한테 다 맡기는건 '너니까 할 수 있는걸 딴 사람에게도 강요하는 악독한 대표'라는 꾸중을 들었다.

내가 악독한 대표라면 결국엔 웹사이트 만들고 싶은 소비자들이 더 많은 인력을 갖춘 회사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한다. 내가 악독한 사람이 되는, 사고의 폭이 좁은 사람들 여럿을 써야만 겨우 사업이 돌아가도록 구성된, 이런 한국IT업계 사고 방식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괴롭다. 그러니까 '[개안뽑]'을 이렇게 외롭게 외치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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